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에서 행복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마태5,3:루가6,20)이었고, 현세의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사람 (대목199~200)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에 나오는 늘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하늘 나라가 약속되었고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며 늘 깨어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놀랍게도 주님의 상심부름을 받을 것이다.
세속을 위하여 사느냐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사느냐의 인생관에서 후자를 택한 제자들은 복을 맞이할 구체적인 영상으로 사람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 성경말씀대로 죽었다가 부활하고 끝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을 하지만 구원의 역사는 그 완성기를 맞이 할 것이며 그 때의 표는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신다는 확신을 제자들에게 박아 준다.
제자들은 물론 그 때에 주인 맞이를 준비해야 한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때가 언제일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그 때는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마태 24, 36).
그러니 주님을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방심은 금물이다. 그들이 세속을 버렸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세속을 버렸다는 것이 값진 일이다. 그들이 어떠한 준비자세로 기다려야 하는가를 예수께서는 오늘 두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당부하신다.
하나는 늘 깨어 기다리는 종의 비유이고 또 하나는 야경하며 집지키는 주인의 비유이다. 이 두 가지 비유를 루가는 연결시키면서 늘 깨어 준비하라는 교훈으로 제시하였고 마르꼬는 깨어있는 종들의 비유만을, 마태오는 야경하는 주인의 비유만을 제시하면서 종국에 가서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늘 깨어 있으라는 교훈으로 삼았다.
루가는 비유의 유도구로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으라』라는 훈계로 시작한다.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이를 악물고 일하는 모습을 「배를 졸라 매고」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길을 떠날 때, 일을 할 때 또는 식탁이나 예식에 참석할 때 준비하고 있는 매무새를 표현한다.
특히 유대아인들은 통으로 된 겉옷을 입고 지내다가 일을 할 때는 허리에 띠를 띠었다 (출애12, 11이하).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성서에서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사람의 옷차림으로 극기의 생활을 상징한다. 이러한 뜻에서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랬고 (예레13, 1이하) 세례자 요한이 그랬다 (마태3, 4:마르1, 6).
극기의 생활은 주님을 맞을 준비가 갖추어져 있음을 뜻한다 (예례 1, 17:요한21, 18, 사도21, 1:에페 6, 14: 베드전 1, 13).
주님을 맞을 준비로서 등불을 켜들것을 요구하였다. 등불은 옛날에 어두움을 밝히는 도구로서 예수시대에는 어둠침침한 집안을 밝히고 집안의 불씨를 보존하기 위하여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켜두었다 (욥18, 5:잠언13, 9:예레 25, 10:묵시 18, 23). 등불이 꺼지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였고 (마태 6, 22:마르4, 21:루가11, 33~36). 불을 켜 들고 있는 것은 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상징하였다 (마태 5, 15 필립 2, 15).
등불은 하느님의 현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징표로서 (묵시21, 23) 그 말씀을 전하는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요한5,35:베드후1, 19). 열 동정녀의 비유에서도 설명이 있겠지만 (마태 25, 1~13) 이러한 뜻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 태세를 띠를 띠고 등불을 켜들고 있으라고 권고한다.
오늘 이야기에서 주인은 잔치에서 돌아 온다고 하였는데 그 잔치와 주인의 상관관계는 확실치 않다. 여기서 잔치가 언급된 것은 잔치는 보통 밤에 하는 관습이어서 주인이 늦게 돌아 온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며 또 잘 지키고 있는 종들에게 마치 잔치에서처럼 주인이 시중들고 종들이 주인대접 받는다는 광경을 떠오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루가의 비유에서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주인을 기다리는데 문지기 한 사람만 깨어 기다리면 될 터인데 모든 종들이 다 깨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는 절름발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비유는 논리에 꼭 맞지 않는다. 다만 교훈적인 관점에 중점을 두었을 뿐이다.
이 비유와 병행하는 마르꼬는 어느 정도 논리적이다.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자 할 일들을 맡기고 떠났다.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니 올 때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분부하였다.
베드로 전서에 『여러분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내려 주실 은총을 끝까지 기다리십시오』(1,13)라고 했듯이 초대교회는 예수 재림에 대한 준비를 늘 권면하였다.
마르꼬는 재림의 시기를 밤으로 잡고 밤시간을 4구분하는 당시의 관습을 소개한다. 그것은 저녁(初更18시~21시), 한 밤중(二更21시~24시), 닭울때(三更24시~3시), 새벽(四更3시~일출)이다. 주인은 종들에게 잠들지 말고 모두 깨어 있으라고 주의를 준다.
깨어 있으라는 교훈의 둘째 비유는 깨어 있는 집주인의 비유이다. 중점은 첫째와 같다. 깨어 있으라는 교훈이다. 집주인은 도둑이 밤중에 와서 집을 뚫고 들어 오는 것을 막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집주인은 제자들이고 도둑은 그리스도에 비유되었다. 좀 이상하지만 비유의 목적은 교훈이다. 도둑놀이를 한다면 도둑되는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생활을 따지자면 인생은 도둑놀이 일수도 있지 않은가. 흙벽으로 된 유대아의 집에 침입하는 도둑은 벽을 뚫고 들어온다. 깨어 있는 주인을 보고 도망갈 정도의 도둑이라면 좀도둑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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