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세운 안티오키아교회의 2대 (혹은 3대) 주교로서 110년에 로마의 콜로세움(원형극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선고를 받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중에 7개의 서간을 쓰게 되었다. 안티오키아 도시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게 된 곳이며 (사도 11, 26),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출발하였던 선교의 중심지였다.
특히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안티오키아 교회와 로마 교회는 초대교회 안에 두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는 소식은 전 교회의 슬픔이었다. 순교지를 향한 그의 여정이 스미르나에 도달하였을 때에 에페소, 마네시아, 뜨랄리아 교회 등에서 보내온 위문사절단과 만나게 되었다. 이냐시오는 이곳에서 자기에게 사절단을 보낸 세 교회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권고의 편지를 각각 보내고, 순교를 당하게 될 로마 교회에도 편지를 보낸다. 다시 뜨로아스에 와서는 안티오키아에 박해가 멎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필라델피아 교회와 스미르나 교회 그리고 스미르나의 주교인 뽈리까르뽀에게 편지를 보낸다. 드디어 로마에 도착해서는 우리가 고전영화 쿼바디스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맹수형으로 순교하였으며, 후에 신자들이 그의 유해를 안티오키아로 옮겨 안장하였다. 교회는 그의 순교일에 따라 10월 17일에 축일을 지낸다.
■ 일곱 서간
이냐시오가 보낸 7개의 서간들 중에서 6개는 교회 공동체(에페소, 마네시아, 뜨랄리아, 로마, 스미르나, 필라델피아)에 보낸 것이고 1개는 뽈리까르뽀 주교 개인에게 보낸 것이다. 뽈리까르뽀 주교에게 보낸 편지는 선배 주교로서 후배 젊은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여야 할 자세와 덕을 가르쳐주는 내용이고, 로마 교회에 보낸 서간외에 다른 5개 교회 공동체에 보낸 서간들은 서로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고 교회의 장상들에게 순명하며, 그릇된 이단들에 조심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 특기할 점은, 이냐시오가 최초로 그리스도교회 공동체를 일컬어 『가톨릭교회』(스미 8, 2)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가톨릭』이란 단어는 「보편적」이란 뜻을 갖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안에는 반드시 주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로마 교회에 보낸 서간은 다른 여섯 서간과 성격을 달리한다. 이 서간에는 교회 장상들에 대한 순명의 권고나, 이단에 대한 경고가 없는 대신 이냐시오 자신의 신앙자세와 주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승화된 인간의 신비적인 면을 감동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 서간은 신학전망 24호(1974년 봄)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다. 이냐시오의 서간들은 평상시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순교지로 가는 여정에서 쓴 것들이기에 그 호소력이 강하며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매우 크다. 사실 이냐시오가 순교한 후에 편지를 받은 각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이 편지들을 서로 돌려가며 보거나 복사하여 보관하였기 때문에 교회 안에 널리 유포되었다.
■ 로마교회에 대한 존경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는 다른 여섯 편지와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냐시오는 원로주교로서 다른 교회들에게는 일치와 조화를 권고하고 있는 반면, 로마 교회에 대해서는 이런 권고를 감히 줄 수 없는 이유는, 『나는 베드로와 바오로 같이 여러분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었고 나는 한 죄수에 불과 합니다』(로마4, 1)라고 설명한다. 특히 로마 서간의 인사말에 나오는, 『여러분의 교회는 로마 사람들의 지역 안에서 선도(先導)하며 하느님께 합당하고 존경, 흠숭, 성공, 순결을 지닌 복된 교회입니다. 사랑을 선도하며 그리스도의 법과 성부의 이름을 보유하였습니다』라는 표현에 대해 가톨릭 학자들과 개신교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이 논란은 로마 교회가 타 교회들에 대해 수위권(首位權)을 갖느냐 하는 미묘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선도하다』(prokathetai)라는 동사가 연이어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첫째 경우에서는 「로마 교회가 로마제국의 교회들에 대해 수위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둘째 경우에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 다른 교회들 보다 앞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다른 편지들에서 이냐시오는 『사랑』이란 단어를 교회와 동의어, 즉 「사랑의 공동체」라는 뜻으로 여러번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들을 선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미묘한 표현상의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이냐시오는 로마 교회에 대해, 『여러분은 아무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로마3, 1)라고 칭찬하고, 끝으로 주교를 잃게 된 시리아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고 염려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로마9, 1).
로마교회에 대한 그의 이러한 존경심은 개인적인 겸손이나 또는, 로마가 로마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 교회자체가 두 으뜸 사도들로부터 세워져 그 권위를 받은 교회라는 논리에서 나온다. 안티오키아 교회 역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가르침을 받아 세워진 교회이지만, 로마교회는 이 두 사도의 가르침이 그들의 순교로써 증거된 교회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교회보다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난 호에서 보았듯이, 로마의 끌레멘스 주교가 고린도 교회에 대해 취했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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