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최후를 이야기로 엮었다. 서기 70년경 마르코는 그 이야기를 채록하였다(14~15장).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마르14, 32~42)
예루살렘 성전 동쪽, 올리브산 기슭에 있는 게쎄마니에는 올리브 나무가 무성했고, 올리브 기름을 짜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게쎄마니(기름틀)라 불렀다. 예수께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신 나머지 「몹시 놀라고 번민 하시며…죽도록 근심에 싸여 하느님 아빠께 간절한 기도를 바치셨다. 『아빠, 아빠께서는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예수께서 머나먼 하느님, 두려운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운 하느님, 정겨운 하느님으로 느끼셨으면 아빠라고 부르셨을까.
예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 하셨다. 그러기에 죽음의 잔을 거두어 주십사고 전능하신 아빠께 매달리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 환히 드러난다. 죽음의 독배를 생수인양 쭉 들이킨 소크라테스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철학자는 영혼불멸을 확신한 나머지 기꺼이 죽음을 맞아들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인간적인 예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셨다. 피하고자 하셨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기로 작심하셨다.
2 체포되시다(마르14, 43~52)
예수께서는 30년 4월6일 목요일 밤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가 최고의회에서 보낸 하인들에게 체포되셨다. 피하시려고 하셨다면야 캄캄한 밤이었으니 얼마든지 달아나실 수 있었으리라. 해방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순례 온 수십만 군중 사이로 쉽게 잠적하실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당신의 삶을 죽음으로 날인하는 것이 하느님 아빠의 뜻이라고 확신하셨기에 묵묵히 대제관 저택으로 붙들려 가셨다.
그때 제자들은 모두 갈릴래아로 달아나고 베드로만은 대제관 저택까지 가서 최고의회의 심문을 지켜보다가 세 차례 스승을 부인하고 역시 갈릴래아로 도망쳤다.
3 최고의회 재판(마르14, 53~65)
예수께서는 30년 4월6일 목요일 밤부터 7일 금요일 새벽까지 대제관 가야파의 저택에서 최고의회로부터 심문을 받으셨다. 최고의회 의원들은 밤새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하느님을 모독한 중죄인으로 단정하고, 율법(레위 24, 16:민주 15, 30)에 따라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총독 홀로 사형언도와 사형집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7일 금요일 아침 빌라도 총독 관저로 압송하였다.
4 빌라도 재판(마르15, 1~15)
최고의회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기면서 고발한 죄목은 신성모독 죄목이 아니고 정치적인 죄목이었으니, 곧 예수께서는 로마 황제의 윤허도 없이 「유대인의 임금」 으로 자처했다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정치와는 거리가 먼 분이심을 간파했지만, 최고의회의 사주로 조작된 민의에 밀려 그만 사형언도를 내리고 당일 사형집행을 명했다.
총독의 눈에는 갈릴레아 출신 시골 청년의 운명쯤은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5 십자가에 달리시다(마르15, 21~32)
4월7일 정오가 지나 예수께서는 총독관저인 헤로데 궁전에서 예루살렘 북쪽 성곽 밖에 있는 골고타(갈바리아)현장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기운이 핍진해서 잘 걷지 못하였던가 로마군 형리들이 리비아 키레네 출신 시몬을 징발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도록 하였다.
형장에 이르러 예수님을 못박기 전에, 로마 군인들이 그 분을 마취시키려고 포도주에다 몰약(아라비아산 향유)를 타서 마시도록 했으나 예수께서는 끝내 사양하셨다. 맑은 정신으로 최후를 마치고자 하셨던 것이다.
6 돌아가시고 묻히시다(마르15, 33~47)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모국어 아랍어로 딱 한 말씀만 하셨다(15, 34).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만 떼어 놓고 보면 절망적인 절규처럼 들릴 수도 있다. 프랑스 문호 앙드레 지드가 그런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저 말씀이 시편 22, 2라는 사실에 유념하라. 시편 22편은 곤경에 처한 의인이 바치는 간구이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외롭게 매달려, 있는 힘을 다해서 시편 간구를 바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4월7일 금요일 서산에 해가 지면서 안식일(토요일)겸 과월절(니산 15일)이 시작되겠기에 (요한 19, 31) 아리마 태아 출신 요셉이라는 지기가 서둘러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었다.
이렇게 역사의 예수는 끝났다. 아니, 끝장났다. 그렇지만 불가사이하게도 예수 사건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부활의 권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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