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나무는 큰 바위를 쪼갤만큼 강할까? 아니면 이미 깨여진 바위 틈의 흙속으로 뿌리를 내려 자라난 것일까? 어쨌든 마찬가지다. 이 그림은 많은 것을 암시해 준다. 끈질기게 생명을 피워나가는 것. 단단한 바위덩어리는 아주 작은 틈만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냉혹하다. 강하고 경직된 대립들、장벽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공동체를 방해하고 「함께함」을 어렵게 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사람들을 무디게 만든다.
사막과 같은 메마름과 경직된 마음이 가져다 주는 무감각함은 숱한 혐오와 잔인함을 동반한다. 이것은 국가와 인종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집단에서조차도 그렇다.
이는 특히 반갑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을 때리고 부수고 죽임으로써 생명의 하느님、사랑의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가 바로 그렇다.
딱딱한 마음은 가장 널리 퍼진 사람들의 공통된 병이다. 이것은 죽음으로 이끈다. 즉 돌과 같은 마음은 어떠
한 생명도 허락치 않는다. 사랑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원인이 무엇일까? 이유는 많겠다. 그러나 이 모든 원인들은 결국 한 가지 사실로 귀착된다. 주제 넘게도 우리는 자신을 삶과 죽음의 주인으로 생각하면서 하느님과 작별한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장벽을 쌓으면서까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 뿐이다. 관계를 악화시킬지라도 연약한 모든 생명의 씨에서부터 절식되어 갈지라도 강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유일한 구원이다. 그 분을 우리 인생을 이끌어가는 힘으로 만드는 것、이것만이 관계악화를 피해가고、장벽을 허물며、바위덩어리를 쪼개는 힘을 가능케 할 것이다. 오로지 하느님 위에 자신을 건설하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의 잎들은 푸르르고 끊임없이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렇게 예레미야는 말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도 그것을 본다. 우리는 모든 돌들을 다 치워낼 수 없다. 모든 바위덩어리를 깨뜨릴수도 없다. 우리는 이런 틈에서 솟아나는 모든 어린 생명들이 크게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해 줄수는 있다. 생명이 자라나고 희망이 심어지고、사랑이 살아 남는 것.
-그리고 무자비한 마음을 적어도 이곳 저곳에서 깨어버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外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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