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낚시터를 찾았습니다. 바람이 약간 강하게 불기는 했지만 오히려 기분은 상쾌하고 그래도 아늑한 골짜기에 탁 트인 전망은 오늘 하루를 쉬는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했습니다.
자리를 잡고 적당해 보이는 낚시대 한 대를 펴서 떡밥을 달아 던지고 나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물고기가 물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손은 부지런히 떡밥을 갈아주며 낚시대 한 대를 더 설치하고 어느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 이제는 충분히 밑밥이 들어 갔다고 생각하면 기다리는 간격이 길어지자 약간 무료해지기에 두손을 깍지끼고 머리를 받쳐 기지게를 하면서「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들은 이 순간에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탁한 공기속에서 숨을 헐떡이는 사람、머리 싸매고 책상 머리에서 공부하는 사람、상사로부터 기합받는 사람、부부싸움 끝에 속상해서 숨을 몰아 쉬는 사람、일이 밀려서 허겁지겁 하는 사람、빚쟁이한테 봉변 당하는 사람、경찰서에서 취조 받는 사람、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당장 먹을 것과 잠 잘 곳을 걱정하는 사람…등등. 나는 이 사람들의 대열에서 벗어나서 한가롭고 자유롭게 낚시를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때에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이 한 마리를 낚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몸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찌를 응시했지만 여전히 소식은 없고 주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잡아내고 있는 소리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나만 못 잡고 다른 사람들은 다 심심찮게 잡아내는 것을 보며 이 저수지에서 내가 제일 불운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내가 제일 행복했었는데 금방 또 불운한 느낌이 드는 변덕스런 내 마음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도 여건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얄밉다고 생각하면 지난날 그가 얄미운 짓을 하던 모든 것이 생각나면서 완전히 얄미운 인간으로 판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내게는 비교적 잘 해줬고 또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역시 지난날의 여러 좋았던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생각납니다.
세상살이도 그렇습니다. 한번 고달프다고 생각하면 한정없이 고달프고 그래도 살만하다고 생각하면 또 그런대로 살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다 싶을 때는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은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려고 해도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감사할 대상을 찾지 못 할 때도 많습니다. 물론 하느님께 감사하면 된다고 말하기 쉽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그게 실제로 감사의 정이 일어나지 않고 다만 머리로만 「감사합니다」함으로 끝나버리기에는 그 감사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결국 감사의 정이 무디어져서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감사해야 할 사람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면 한 두사람이 아니고 너무 많습니다. 내가 낚시터에 앉아 있기까지만 해도 뭇 사람이 직접 간접으로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나는 큰 결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감사하면 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나의 인간관계는 걷돌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또 이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도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독신자라 가끔 결혼한 부부들이 부럽습니다. 남편이 내게 말하기 거북한 것은 부인을 시켜 말하고 부인이 하기 힘든 일은 남편이 대신하며 혼자서 치루기가 벅찬 일은 둘이서 함께 하고、그러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주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나 내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내 손으로 해야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잠자다가 열이 나고 갈증이 날 때 물 한잔이라도 내손으로 떠마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와서 나갈 때 어지러진 탁자와 찻잔이 그대로 있으면 공연히 속이상합니다.
부부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도움을 받고 살면서도 그것을 너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부부생활에 익숙한 그들이 과연 평소에 서로에게 얼마나 감사의 정을 느끼며 사는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일생을 서로에게 헌신하며 살기로 한 그 약속 자체가 너무도 가슴벅찬 「감격스런 사건」 일진대、하루의 작은 봉사들이 그 한번의 약속을 이루어나가는 생활이라 생각하면 일상생활로 이어지는 상대방의 작은 봉사들을 당연한 것으로 마냥 넘겨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감사하는데 익숙해야만 하느님을 찬양 하고 감사할줄도 알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유일하게 감사하러 온 그 이방인(루가17、11~19)도 사람에게 감사할줄 알았기에 하느님께 찬양드리며 감사하러 돌아왔을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요구만 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혼을 생각할것이며、하느님께도 무슨 요구만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생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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