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전교활동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철거민들을 이주시켜 마을을 만들고 신용협동조합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하는 사이 영세자 수가 자꾸 늘더군요. 이런 걸 보면서 전교의 참된 의미는「신앙인들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그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삶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의 모습을 알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가난한 이와 같이 있는다」는 데 뜻을 두고 20여 년을 빈민지역서 판자집 주민 넝마주이 철거민 등과 함께 해온 박재천씨(세자요한ㆍ서울 행당동본당ㆍ42). 그는 자신 역시 함께 활동했던 정일우 신부를 비롯 가톨릭 빈민 활동가들의 삶에 이끌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례라고 밝히면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한 전교도 중요하지만 신앙인 하나하나가 굳이 전교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아도 참 신앙적 자세로 살면 그것이 진정한 전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전국 빈민운동단체 협의체인 전국도시빈민위원협의회 실무집행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사목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는 박씨는 빈민운동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74년경부터 활동해온 빈민선교활동의 핵심 인물이다. 교회 내에서도 천주교 도시빈민회장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는 등 실무와 행정을 겸비한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대학시절 우연히 청량리 판자촌에 방을 얻어 생활하다「개미굴」같은 판자집 동네의 현실과 정치 사회적 모순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빈민선교활동에 뛰어들게 됐다고 활동의 동기를 들려준다.
정일우 신부 제정구 의원 등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청계천 양평지역에 들어가 주민들을 위한「복음자리」를 마련하는 등 그들의 권리 회복과 자활을 돕는 한편 77년 양평지역 철거민과 79~80년 초 당산동 신림동 목동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3차에 걸친 집단이주사업의 실무 역할과 신협 업무를 담당했던 박씨.
88~92년 천도빈 사무국장 회장 등을 맡는 동안 주거권운동을 축으로 한 활동을 벌이면서 일상적으로 전개하는 주민프로그램을 통합, 빈민사업에 대한 관심을 교회에 넓히고 지역 신자들이 이것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힘을 쏟기도 했다.
박씨는 아직 전반적으로 사회교리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저조하고 본당 신자들도 빈민지역 일을 자기 일로 생각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한다.
『평신도들의 사회적 관심을 강조한 것이 사회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의식이 일반화돼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교회 행정 당국의 사목적 배려와 함께 빈민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공조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그는 빈민사목이 앞으로 공동선적인 가치를 더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회 전체에 대한 균형성과 보조성을 생각하면서 이를 통해 종교적 구원이 사회적 구원으로 나아가도록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끊임없이 신앙적 관점을 놓치지 않았고 여러 힘든 과정에서도 그것을 지탱하는 힘은 하느님이었다고 밝힌 박씨는 앞으로도 예수님이 몸소 실천하셨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택정신을 신앙 안에서 살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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