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부재중에 그 집의 하인들은 늘 깨어 있으면서 주인이 돌아 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종말론적인 비유에 이어 역시 종말론적인 비유의 말씀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비유는 주인이 돌아왔을 때에 떠날 때에 말긴 직무에 대하여 충실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일처리를 했느냐에 대한 점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직무란 다름 아니고 맡은 식구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이다. 이 비유의 이야기는 루가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가 거의 같은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데 다만 한 가지는 그 시기적 문맥이 다르다.
마태오는 이이야기를 주님의 수난 직전 올리브산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글을 짰고 이 이야기를 종말론에 대한 훈화속에 집어 넣었다. 루가는 예수께서 갈릴래아 전도중 제자들을 교육하는 훈화로 취급하였다.
하여튼 예수는 이미 사후의 구세사업을 내다보고 계셨고 그 사업을 사람들에게 맡기실 계획을 가지고 제자들을 교육시킨다고 봐야 한다. 제자들은 한 가족으로 표현됨 공동체를 맡아 봐야 했고 그 직무수행에는 경각심과 충실성과 현명함이 요구된다는 교훈이다.
이 교훈은 잘하면 좋고 잘못하면 그만이라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고 잘하면 상을 받고 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다급한 직무이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깨어 기다리는 종의 비유」에 이어 오늘의 대목「충실하고 현명한 집사」의 비유가 곧바로 이어 지는데 루가 복용서는 이 사이에 베드로의 질문개입이 삽입되어 있다.
『주님, 이 비유의 말씀은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까?』이 질문은 어떤 비유를 두고 하는 질문인지 확실치 않고 더욱 이 그 질문의 동기가 무엇인지 확실치 않다.
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그것은 사도시대에 교회를 말아 다스리는 지도층에 대한 훈시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그 첫째이고, 둘째는 이미 여러 차례 성령의 도우심과 하늘 나라에 대한 확약과 격려를 받은 제자들의 수장인 베드로가 주님께서 맡기신 직책에 대한 사후 점검에 따른 심판을 받는다는 불안에서 나온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은 것은 그 말씀은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겠지요라는 뜻으로 한 질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견해가 다 포함됐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차 하느님 나라의 살림을 맡을 집사들은 제자들에게 직무에 대한 경각심과 충실성과 현명함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맡은 가정, 단체, 사회, 국가 등 인류사회의 공동체에 대한 책무는 언제나 주님이 와서 셈 받을 때를 대비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충실해야 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 대신 깨우치는 질문으로 비유를 시작한다. 집주인이 집을 비우는 동안 모든 살림을 청지기 또는 집사에게 맡겼는데 충성스럽고 현명한 종은 누구이겠는가. 때맞추어 양식을 다른 식구들에게 공급한 집사가 아니겠는가. 주인이 돌아 와서 이렇게 하는 종을 보면 과연 그 종은 주인의 뜻을 잘 이해했고 그대로 시행한 동이니 그에 대한 신임은 더욱 두터울 것이다.
이런 종은 행복하다. 우리네 관습대로는 주인이 집안, 살림은 안주인이 하는 것이 상례인데 여기서는 집을 비우면 그동안의 집사가 살림을 하고 그 수하에 많은 종들이 예속되어 있음을 짐작케한다.
오늘날 우리의 기업주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왕국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왕국을 염두에 두고 있고 그 나라가 현세에 입하고 있는 교회를 생각하였다.
여기서 그 집사가 맡은 직무의 요체는 다른 식구들에게 식량을 제때에 공급하는 일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안에서 권력을 쥐고 자기 부하들을 보살피는데 게을리하는 고위층이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이러한 충실하고 현명한 집사종의 표본으로 아브라함의 집사 엘리에젤과(창세15. 2 : 24. 2 이하) 파라오왕실의 요셉을(창세 41장)들 수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재림을 가르칠 때 우선은 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집주인에게 비유한다. 열 동정녀의 비유(마태25. 1∼13). 탈란트의 비유(마태25,14∼30)에서도 그렇지만 주인이 몰아와서 언제나 셈을 받는다. 그리고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을 가려낸다. 오늘의 비유에서는 충실한 종에게 더 많은 임무를 맡긴다. 『그에게 모든 재산을 맡길 것이다』.
주님의 사업을 맡는 것은 책임이 돌아오는 일이면서 그만큼 영예로운 일이다. 그래서 그 종은 행복하다. 불충실한 종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직무를 저버리고 자기 야욕을 채우는 사람이다.
『주인이 더디올 것이다』라는 잘 못된 판단에서 불충실이 시작된다.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하는 표현은 주님의 재림이 언급될 때마 다 붙어 다니는 말이다. 우리 현실에서 하느님이 직접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주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명예만 생각하고 자기 직분을 남용하는 것, 잘못된 판단아래 자기의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충실한 종이다.
오늘 비유에서는 먹고 마시고 종들을 제멋대로 다룬다고 했지만 자기 고집대로 남을 억울하게 처리하는 처사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직책을 특별히 맡지 않은 평범한 종 은 마음이 편할 것이다. 셈바칠 것이 없으니까. 그러니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 주어야 하며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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