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에 이어 이번에는 인숙이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인숙이 누나 이름은 혜자였다. 그는 나를 보자 헤어졌던 엄마를 오랫만에 만난 듯이 와락 내 가슴에 와 안기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한참을 운 다음 의자에 앉아 계속 흐느껴 울면서『아빠가 왜 나는 버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하며 말끝을 흐린다.
『지금까지 인숙이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누나에게 듣고 싶어 오라고 했어요』했더니 머리를 들고 차근차근 말을 잘해 주었다. 『경상도 영천에서 살 때 아빠는 군인으로 선임하사였고 엄마 얼굴은 저도 기억이 잘 안나요. 새벽쯤 할머니가 물 떠가지고 인숙이를 낳는 방에 들어가셨고 저도 그 방에 함께 있었어요. 그 후 백 일잔치 때 군부대에서 나무상을 짜가지고 부대원을 다 먹일 수 있을 정도로 큰잔치를 했어요. 그 후 며칠 있다가 크게 부부싸움을 했고, 친정에서 남자 장정들이 여럿 와서 엄마를 업어가듯이 강제로 데려 갔어요.
그때 엄마는 안 갈려고 무척 애썼던 기억이 나요. 결국 끌려간 후 아빠가 찾으러 나가셨다가 못 찾고 그 후부터 방황하시기 시작했어요. 할머니하고 인숙이 그리고 저 셋이서 아빠가 생활비를 전혀 대주지 않는 상태로 할머니가 집집마다 동냥을 해서 인숙이를 업고 다니시면서 살았어요.
무척 더운 여름이었는데 하도 업고 다녀서 애기가 병들 지경이었고 다 죽었다고 생각, 방웃목에 밀쳐 놓았어요. 병원에 데리고 가도 숨이 끊어졌다고 받아주지 않았어요. 동네사람들이 갖다 묻으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빠 돌아오시면 한번 보이고 묻는다고 기다리셨습니다. 이틀을 놔두었었는데 그때 우연히 시골 사시는 고모님이 오시어, 아직 가슴이 따뜻하다고 하시더니 한약방으로 뛰어가 시어 구룡탕을 구해왔어요. 수저로 약을 입에 떠넣어 주어도 넘기지 못했어요. 처음엔 한 그릇 정도를 흘려버릴 정도로 삼키지 못하더니 조금씩 수저로 밤새도록 떠넣었더니 새벽녘에 차차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그 후에 아빠가 돌아와 보시고는 혼자 전근을 가셨어요.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빠가 전근 가신 곳을 찾아가 보니까 어느 여자와 살림을 하고 계셨고 저는 그곳으로 전학을 했습니다. 얼마 후 할머니와 인숙이를 영천에서 데리고 왔어요.
그때는 우유도 없던 때라 쌀을 갈아가지고 끓여먹이는 등 할머니가 무척 고생을 하셨어요. 새엄마는 미장원을 개업하셨는데 어느 날 실탄동에 물을 얹어놓고 아빠 세수물용으로 끓인 것이 새벽에 뚜껑을 열다가 그만 터졌어요. 새엄마는 화상을 크게 입었고 군의관들이 찾아와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한쪽팔이 완전히 굽어 불구가 되는 중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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