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사랑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씨앗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그 씨앗을 터뜨리기가 어려울 뿐이예요. 나의 사랑을 우리 가정의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의 씨앗을 갖고 계신다면 한 번 결심해 보세요. 삶의 새로운 기쁨과 평화를 느끼게 되실 겁니다』
가정 형편상 고아 아닌 고아가 돼야 하는 어린 아이들을 아무 대가없이 자신의 친자식처럼 일정기간 키워주는 사랑의 부모.
현재 성가정입양원(원장=김영화 수녀)이 실시하고 있는 사랑의 부모는 친부모의 형편이 좋아지거나 입양이 결정되면 다시 가정으로 되돌려보내는 일종의 시한부 부모인 셈이다.
최근 서울의 전농동본당에는 한 가정에서 시작된 사랑의 부모가 소리소문없이 교우들에게 확산, 모두 네 가정이 사랑의 부모로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정의 해체가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이웃에서 이웃으로 전개되는 사랑의 부모되기 운동은 내 가정만 행복하면 된다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가정과 가정이 손을 잡고 더불어 사는 사회,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9월 28일 저녁, 이들 네 가정은 열흘 전 사랑의 부모를 시작한 서영이네 집에 모여 뒤늦게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보람,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기른 정이 낳은 정 못지 않아요. 우리 사랑의 부모 모두 친자식이 있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젊은 시절, 고만고만했던 아이들을 키울 때 느껴보지 못한 생명의 신비와 아이 키우는 재미를 요즘 경험하고 있어요. 마치 신혼으로 되돌아간 기분입니다.』
이들 사랑의 부모들은『사랑을 주려던 우리 가정에 오히려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아이』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랑의 부모로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신중석(임마누엘ㆍ44) 김경희(세실리아ㆍ40)씨 부부였다.
고 2, 중 3, 중 1의 2남 1녀를 둔 신ㆍ김 부부가 승환이(4살)의 부모가 되기로 자처한 것은 뒤늦게 가진 생명을 버린 죄에 대한 보속 때문이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거기다 성당 미사 반주자, 피아노 선생 등 1인 4역을 해내야 했던 김씨가 사랑의 부모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남편은 그녀의 건강을 염려해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물질적인 봉사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사랑을 나누는 봉사는 몸이 건강할 때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죠. 아이들이 적극 찬성해서 승환이를 데려올 수 있었어요.』
92년 9월, 승환이를 데려온 후 가정 안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승환이네와 가깝게 왕래하며 사랑의 부모 역할을 지켜보다 자신도 사랑의 부모가 된 김영식(이시돌ㆍ54) 김용자(마우라ㆍ50)씨 부부에게도 일어났다. 김씨 부부는 지난해 11월 현미(2살)의 부모가 됐다.『대학 다니는 딸과 아들 녀석은 모두 저녁 늦게서야 돌아오고 50대 부부가 마주 앉아 맨날 재미 있게 나눌 이야기 밑천도 점차 떨어졌었죠. 현미가 오고 나선 우리 부부는 나눌 얘기가 너무 많아졌어요. 가끔 있게 되는 부부싸움에서도 현미는 화해의 매개체가 되곤 합니다. 현미는 우리 가정의 화목을 조성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돌쟁이를 키우기엔 허약하게만 보이는 부인의 건강이 걱정됐지만 주위 교우들이 시간만 있으면 현미를 돌봐주는 통에 김씨 부부가 현미의 얼굴을 보기 힘들 때도 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현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나 현미를 유모차에 앉혀 동네를 산책하며『아버지와 딸인가? 할아버지와 손녀인가?』를 궁금해하는 주위의 시선을 받는 것도 김씨 부부에겐 모두 즐거울 뿐이다.
김씨의 이런 즐거움을 지켜보던 견진 대녀 박노헌(미카엘ㆍ43) 이경옥(아녜스ㆍ40) 부부는『예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좋은 일을 이번 기회에 실천해 보자』고 다짐했다. 지난 6월 호민이(2살)를 데려오면서 박씨네 가정은 아들 셋을 둔「아들 부잣집」이 됐다.
최근 서영이 부모가 된 이명열(마태오ㆍ46) 안일섭(데레사ㆍ45) 부부도 슬하에 아들 하나만 있는 것이 너무도 적적해 딸 하나를 입양해 보기로 결심하고 있었다.『딸 하나만 어디서 구해 달라』는 부탁에 본당 수녀는 승환이네와 이씨 부부를 연결시켜줬다.『입양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랑의 부모가 되어 보라』는 요청에 따라 이씨 부부는 이를 선뜻 받아들이고 집의 베란다도 넓히고 도배도 새로 한 후 서영이(2살)를 맞았다.
좋은 변화가 많을수록 거기에 따르는 어려움과 고통도 있기 마련이어서 이들 사랑의 부모들은『40, 50대에 아이 키우기는 육체적인 힘이 딸려 생각 만큼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하면서도『얼마 정도 적응이 되면 오히려 건강이 좋아진다』고 전한다. 주위에서 좋은 일 한다면서 의류, 장난감을 사다 줘 그다지 새로 생긴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크지 않지만 아이가 아플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성가정입양원이 위치한 성북구 관내에서만 의료보험 혜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는 이용할 수가 없어요. 제도적인 조치가 뒤따랐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의 걱정거리는 바로 아이들이 친부모나 새로운 가정에 입양 갔을 때 느끼게 될 혼란이다. 그래서『헤어지긴 정말 싫지만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하루 빨리 앞길이 결정됐으면』하는 것이 사랑의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가정의 평화는 물론 이웃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심고 있는 사랑의 부모들. 그들은『사랑만 받고 자라던 우리 아이들이 어린 동생을 보면서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 지를 배우고 있어 무척 대견스럽다』고 전한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지만『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의 재롱과 성장을 지켜보며 가정의 소중함,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배움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하루 빨리 만들어가는 것』이 사랑의 부모들이 가진 소망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