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성서 사본에서는 666대신 616으로 읽는 것이 많이 있다. 이것은 교회의 초세기에 666을 네로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로를 라틴어로 쓸 경우 NERON=666=N(50)+E(6)+R(500)+O(60)+N(50)이며 실제로 마지막의 N은 없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생략하면 616이 나온다. 이 때문에 성서를 베껴 적는 사람들이 숫자를 교정하여 모두가 네로로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666은 그 당시 독자들에게는 우리 교회를 박해하며 모든 신자들을 죽음에로 이끌었던 네로를 나타내고 있으며, 악마의 육화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 숫자를 이해하여야 하겠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같은 의미로 알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666은 사탄의 화신으로서 그 옛날 초대 교회시대에 신앙인들을 위협하며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하느님의 진리에서부터 분리시키려 노력하였던 네로(넓은 의미에서 로마제국)를 의미하였듯이, 현대에서 우리들의 신앙을 위협하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빼앗아가는, 그리하여 우리들의 참된 믿음을 흐리게 만드는 사탄의 종들 또는 그 세력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주의하여야 할 것은 묵시록 13장 11절에서 16절에 나타나 있듯이 이 악의 화신은 또다른 짐승 즉 거짓 종교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신앙을 지켜나가며 예수님께 충실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구원자들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자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더라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어떻게 해서라도 뽑힌 사람들마저 속이려고 큰 기적과 이상한 일들을 보여줄 것이다』(마태 24, 23~24).
■ 제3장 요한묵시록에 나타난 종말론
묵시록의 주된 관심은 종말론에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즉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악의 세력의 파멸에 그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시록의 종말론은 역사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과 역사는 이제 종말까지는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서 그 의미를 새롭게 갖게 되는 것이다. 묵시록의 저자는 마지막 시간을 알고 느끼고 있으며, 그것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묵시록에 사용된 법적인 용어들은 이 심판에 대한 것을 강조하여 주고 있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설정된 마지막 시기에 대한 임박한 날자는 죽음을 위한 심판의 시간이며 땅을 파괴시키는 자들에 대한 파멸의 시간인 것이다(11, 18 참조). 이 심판은 하느님 분노의 크신날에 이루어지는 것이며(6, 17:16, 14 참조), 이 날에 악마적 세력과 크리스찬 공동체간의 종말론적 전쟁이 그 극에 달할 것이다.
마귀의 종말론적 화(12, 17)와 모든 나라들의 분노(11, 18)는 하느님의 분노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다. 하느님의 분노는 7개의 봉인을 떼면서 (6, 1이하), 마지막 나팔을 불면서 (11, 15~18), 분노의 포도주와 함께(14, 10) 그리고 분노의 대접들과 함께(15장 이하), 바빌론의 심판과 함께(16, 19),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19, 15) 모든 민족들 (11, 18:14, 8:18, 3:19. 15)과 미신적 힘의 총체인 바빌론(14, 8:16, 9:17~18)위에 쏟아질 것이다. 그러하기에 앞으로 닥칠 환난의 시기에 오로지 참된 크리스찬만이 구원될 것이다(7, 1~8:11, 1~2 참조). 하느님은 이 심판의 날에 당신을 위해 순교한 자들의 피의 대가를 치루어 주실 것이며 (19, 2) 그들이 옳았다고 선언하여 주실 것이다 (18, 20).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는 크리스찬들 (19, 11: 167 참조)은 자신들의 고통이 기쁨으로 바뀔 그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날과 시는 언제가 될 것인가?
묵시록의 저자는 6장 9~11절에서 제단 밑에 있는 역혼들 즉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죽어간 역혼들의 입을 벌려 마지막 심판 때까지 얼마나 있어야 되는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동료 종들과 형제들이 다 죽어서 그 수가 찰 때까지 잠시 쉬라는 분부를 받는다. 결국 하느님의 심판이 언제 있을 것이냐의 질문에「잠시」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크리스찬 공동체의 박해는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응답을 듣는다.
심판 때까지의 기간은 아주「짧다」(1, 11:22, 6ㆍ10 참조). 그러하기에 요한은 다른 묵시록과는 달리 이 책을 봉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22, 10). 악마인 용은 오직 짧은 시간동안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을 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12, 12:20, 3). 마지막 7개의 나팔이 울렸을 때, 시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10, 6~7).
이 짧고 절박한 시간을 묵시록의 저자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또한『내가 곧 가겠다』(22, 20:22, 8:2, 16:3, 11) 말씀하시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크리스찬들은 비인격적인 종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실 분으로서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으며, 자신을 시작이요 마침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찬이 세상의 종말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주 예수님 빨리 오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