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새벽은 이집트로 떠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으니 무게 때문에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혀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집트행 버스는 신나게 달려 예루살렘을 벗어나 텔아비브를 지나치고 있었다. 4시간여를 더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이스라엘 국경에 다다랐다.
이집트 국경 진영으로 들어서니 마치 시골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세관 심사대에서 모두들 그냥 지나가길래 나도 당당하게 지나갔는데 동양 여자가 지나가니까 심심했는지 정지를 시키는 것이었다.
잘 챙겨놓은 배낭만 뒤져가지고 사람 신경질만 북돋아놓고…이집트 사람들의 기질 한 번 참 희한했다.
그것뿐인가 세상에 한 번 출입했던 입국 심사대를 몇 번이고 들락거려도 아무 소리 안 하는 나라는 처음 보았다.
대기하고 있는 이집트쪽 버스에 짐을 실어놓고는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두 시간…버스는 움직일 기세가 없었다. 드디어 세 시간째 모두를 태운 버스는 그 자리에서 또 한 시간을 족히 부르릉거리다가 출발했다.
버스 창 밖으로 이어지는 이집트의 땅들은 온통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모래, 사막, 가끔씩 지나치는 이집트인들과 낙타…연속적으로 창 밖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이스라엘을 출발한 지 12시간 가량이 되었을까 얼마나 긴 여로였는지 거의 몽롱해져갈 즈음 허허한 사막이 끝나고 갑자기 화려한 도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카이로에 진입이 시작된 것이다. 아프리카 최대의 도시답게 카이로의 밤은 높은 빌딩들이 뿜어대는 네온사인 속에서 현란한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려서 각자의 행로를 찾고 있을 때 나는 배낭을 메고 어슬렁거리고 있자 이집트인 안내원이 와서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왔다. 싼 숙소가 많이 있다는 타라르하르브 거리로 갈 거라고 했다. 멋쩍게 웃기만 하던 안내원이 막 버스에서 내린 배낭 여행자들을 붙잡더니 동양인 여자 여행자가 혼자 숙소를 찾는데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다며 나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를 일행으로 끼워준 그들은 영국인 여자, 남자 각 한 명씩 그리고 호주인 남자 한 명이었다. 내가 영어 못하는건 또 어떻게 알았지? 걸려도 아주 단단히 걸려들고 말았다. 모국어가 모두 영어인 본토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된통 걸린 셈이다.
다음날 우리는 피라밋이 있는 기자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가 서지도 않고 달리는 걸 성난 황소처럼 한꺼번에 뛰어서 힘껏 올라탔다. 무슨 홍콩 영화에 나오는 무법자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릴 때도 버스가 정류장에 제대로 서지도 않길래 하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속도가 좀 늦어졌다 싶으면 뛰어내려야 했다.
기자는 그곳에서 내려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어서 그런지 거대한 피라밋의 아스라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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