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전 대목에서 제자들에게 구원의 결정적인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은 화창한 봄만은 아니고 구원 시기의 도래의 표는 오히려 세상이 혼란스럽게 된다는 위기를 예고하셨다. 그 위기는 예수 자신에게는 완성시켜야 할 세례이고 그것은 십자가상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사도시대 교회에는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고 사도시대 교회에는 박해가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54절부터는 청중을 상대로 말씀하신다. 그 청중은 루가에 따르면 일반 청중이고 마태오에 따르면 바리사이파와 사루가이파 사람들이다. 질책하는 내용으로 보아 예수의 적대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나 민족의 운명 판단에나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형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일에만 현명한 판단력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 만한 판단력이 있으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뜻이 나타나는 징표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들은 서쪽에 구름이 이는 것을 보고 비가 오겠다는 것을 알고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날씨가 더울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안다(루가 12、54~55). 또 저녁 맑은 날씨를 예감하고 아침 하늘이 붉으면 날씨가 흐려져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마태16、2~3).
지금은 일기예보를 과학화하여 기압의 수치로 나타내지만 방향을 보고 일기를 알아맞추는 것은 옛날 어디에서나 놀라운 정확성을 가지고 예견하였다. 동양에서는 농사일을 하는데 주로 농민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기를 예측하였지만 성서의 지방인 팔레스티나에서는 오늘 서술된 일기예보방식으로 전장에서 작전을 짜고(열왕상18、41~46)、사도들은 같은 방식으로 전교생활의 항해상 위험을 극복하였다(사도27、13:28、13). 그러니 일기의 전후를 알아보는 일은 굉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구름이나 바람의 변화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외적 현상에 불과하다. 욥기에서 욥의 친구 엘리후가 말했듯이『하느님께서 모든 일을 어떻게 거느리시는지 우리는 알수 없다. 어떻게 구름에서 번개가 번쩍이는지、구름이 어떻게 두둥실 떠있는지 우리는 모른다』(욥 37、15~16). 겉에 나타나는 현상변화를 보고 일기를 알아보는 것으로 자족하지 말고 변화를 일으키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는 노력의 성실하게 강구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와 있다면 그 징조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 식별을 게을리 하거나 알아 볼 마음가짐조차 없이 민중의 율법지도자노릇을 하는 것은 위선자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해석하며 민중을 지도하는 자로 자처하는 바리사이파와 사두가 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의 움직임이 나타내는 징표를 무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사신 놀라운 일들과 모여드는 백성 보고、그의 메시지를 들으면 메시아가 와 있고 하느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그것을 보고 듣고도 고개를 돌리는 그들은 성서용어로 위선자들이다.
이것은 시대의 징표인데 구름의 모양과 바람의 변화를 보고 일기를 아는 그들이 어찌 시대의 징표를 모르는가.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명백한 메시아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의 멸망이 곧 닥칠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일의 마지막도 된다.『하느님의 구원하러 오신 때를 모르니』(루가19、44) 이것 또한 그들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조이다. 사람에게 사리를 판단하는 판단력이 주어졌고 판단할만한 징후가 나타났으면 그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들에게는 돌아 설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는 때가 늦기 전에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되찾아 평화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때의 징조가 지금 나타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아집을 버리고 날씨를 알아 차려야 할 것이다. 내 잘못을 들추어 나를 고발하려고 나를 끌고 법정으로 갈 때에 그와 끝까지 다투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결국 재판관→형리→감옥의 절차를 밟을 것이 아닌가.
옳은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나의 잘못은 엄청나다. 잘못 판단은 옳은 판단에 의하여 판결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한다는 것은 무슨 나쁜 짓을 행동으로 한 것과는 달리 심성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마음을 돌릴 여유가 있다. 『네가 고발 자와 같이 법정으로 가는 길에서』라는 표현은 이러한 여유를 가리킬 수 있다. 똑똑한 사람도 판단의 실수를 하기는 우둔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그 판단회수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 판단한 것이 결정적이 아니고 마음을 다시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참으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법정으로 가는 동안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고발자와 화해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은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다. 구원의 시대의 징표가 나타난 지금이 바로 마음을 돌이켜 영원한 심판자이신 하느님과、그리고 그 위임받은 예수 그리스도와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를 놓치고 끝까지 응고 집에 사로 잡혀 있으면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 한 푼을 다 갚기까지는 네가 거기서 풀려나오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진실히 말한다』라는 강조사를 붙여 말씀하신 것은 다 갚으며 나온다 라는 말이 아니고 양심을 거역한 잘못은 심판 날에 완벽하게 추궁 받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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