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어둠이 짙어가는 황량한 광야에 홀로 서있는 심정이었습니다. 고통스럽고 외로운 사람. 그 아무도 도울 수 없고 그 아무의 말도 나를 달랠 수 없는 처절하도록 외롭고 쓸쓸한 나날이었습니다.
수십명이 돌리는 요란스러운 틀소리 속에『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속에 암흑에 헤매는 한마리 양을…』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가 함께 울려퍼졌습니다. 그때에 내가 유일하게 찾은 분이 예수님이었으며 유일하게 나를 찾아 위로해 주신분이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사십년전의 그 심정으로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 옛날 한장의 편지로 내게로 돌아왔던 남편은 이때도 뉘우치는 편지와 함께 몸이 많이 아프다면서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돌아와 보니 남편은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몹씨 수척해 있었습니다. 이튿날 병원에 가보니 폐결핵 삼기라는 진단이 내렸졌습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잠재해 있던 병이 악화되어 나의 고난의 길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집에 온지 얼마 안되어 딸이 아버지가 ○○○와 만났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저 어떤 여자와 사귀었다는 얘기와 그녀와 만났다는 얘기는 내게 있어 너무도 큰 차이를 안겨주는 충격이었습니다. 겨우 회심의 길로 들어서 진심으로 남편을 위해 살아야겠다던 나의 굳은 의지는 간곳이 없이 허탈감과 극심한 분노가 나를 엄습해 왔습니다.
꽃샘 추위를 맞은 이른봄의 초목과도 같이 다시 시련의 찬바람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마음대로 무시하고 마음대로 학대하던 사람이 자식들 앞에서 내게 크나큰 모욕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를 또다시 처절하도록 외롭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병든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은 아무런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모른척하고 지내려 무척이나 애를 썼으나 기여코 나는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도 남편은 자리에 누워 멍하니 천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기여코 ○○○를 찾아내어 만났다면서요?』하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인하려고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느냐면서 다구치더니 한다는 말이『당신이 들으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녀는 예나 다름없이 참 멋이 있고 의젓했어』사십년전 결혼 삼일만에 하던 그 말투와 똑같이 자랑스러운듯 거리낌 없이 말했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애인은 바로 지척에 살고 있었습니다. 딸을 위시해 집으로 온 그녀를 본 며느리까지 아버지의 옛 애인을 보고 참으로 품위있고 의젓한 여인이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후 나는 참으로 피나는 노력으로 저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애를 쓰면 쓸수록 사랑과 증오의 갈등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사람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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