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이 친누나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저는 그때 애기봐줄 사람이 없어서 네살먹은 인숙이를 데리고 학교에 같이 가서 교탁위에 올려놓고 공부했어요. 아빠가 군대를 제대하실 무렵에 저는 3학년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퇴직금을 타가지고 혼자 서울로 가셨어요. 화상을 입어서 팔 하나가 불구가 된 엄마는 아빠를 찾아서 다녀오시더니 다른 여자와 살림하고 있는것을 알게 되셨어요. 엄마가 우리들 보고 서울로 가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은 신촌 산동네로 판자집이 많은 곳이었어요.
아빠는 자주 집을 비우셨고 늦게까지 들어오시지 않았던 어느 날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큰 도로 건너편 호화찬란 한 동네술집으로 기억되는데 거기서 지키고 있으니까 밤 11시쯤 아빠가 차를 타고 나오셨어요. 어떤 여자가 나와서 아빠와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차에 여자를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지셨어요.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유흥가에서 지내시고 생활비도 안대주셨어요.
우리는 힘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혼자 사시다가 어느 날 임신한채 울면서 우리보고 잘 있으라고 하시며 영영 어디론가 가버리셨어요. 그 후 또 새 엄마가 오셨는데 언젠가 밤에 보았던 그 여자였어요. 국민학교 4학년 때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빠는 차 사고로 교도소에 수감된 후 우리는 대전 고모 집으로 가서 8개월간 살았어요.
다시 아빠가 출소하여 만날 수 있었고 아빠와 인숙이와 셋이서 몇 개월 동안 여관에서 살았어요. 5학년 때 일수로 얻은 방으로 이사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인숙이는 종암동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했어요. 그 애는 싸울 줄도 모르고 퍽 온순했는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그런지 성장이 매우 더뎠어요. 인숙이는 국민학교 5학년 때 헌책을 많이 모아 가지고 뜯어서 봉투를 만들어 팔아서 한국 전력 주식을 많이 사와 중학교 들어갈 때 입학금에 보탤 정도로 아이가 착실했어요.
절대로 말썽 뿌리거나 싸움하지 않았어요. 밤 11시면 인숙이는 방 청소하고 저는 밥을 지었어요. 매일 밤 12시 넘어서 돌아오시는 아빠 맞이할 준비로 둘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학교에 다녔어요. 새엄마는 며칠씩 바뀌고 때로는 인숙이가 알뜰하게 저축한 저금통을 가지고 나간 엄마도 가끔 있었어요. 처녀가 들어와 남의 아이 남매를 거두어 주면서 남편이 바람피우니까 새 엄마는 화풀이로 우리를 몹시 때렸고 아빠한테 일르면 죽인다고 하여 말도 못하고 우리 남매는 남모르게 구박받고 살았어요.
저는 5학년 인숙이가 2학년 때 현재의 엄마가 새로 들어오셨어요. 새엄마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윤미를 낳았어요. 아빠는 차사고가 자주 났고, 운전중지를 당해 당장 먹고 살기가 무척 어려운 때 돈을 벌기 위해 엄마도 장사를 나갔어요.
새엄마들한테만 매를 맞은 것이 아니라 새엄마가 도망갈때마다 「너희들 때문」이라고 화풀이로 아빠한테도 매를 맞으며 살았어요. 저도고 1학년때 아빠가 너무 무서워 집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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