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TV를 보고 있는데, 부부가 함께 출연해서 자기 부부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다양하고 달콤하게 소개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픽」하고 웃었습니다.
어떤 한 부부가 자기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진 영원한 부부』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부부를 영원하다 했는가? 부부의 인연은 둘 중에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종말인 것을…이 세상에서 부부는 천당 가서도 부부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미안하지만 천당에는 자녀 낳을 일이 없으므로 부부가 필요 없습니다.
만일 부부가 천당 가서도 서로 만나서 부부생활을 한다면 이 세상에서 독신으로 산사람은 천당에서도 외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재혼 재재혼 한 사람들은 오늘 성경에서 질문하고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영원한 부부란 말은 「이 세상에 둘 다 살아있는 동안 끝까지」또는 「영원히 서로 사랑하고 싶은 부부」정도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일생 사랑하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시신 앞에서 울며, 『여보, 나 혼자 두고 가면 나는 어쩌란 말이오? 하지만 이 세상일이랑 다 잊고 편히 가시구료! 내가 자식들 뒤치다꺼리가 끝나는 대로 당신따라 가리다. 당신은 먼저가서 내 자리 잡아놓고 편히 쉬며 나를 기다리고 계시구료!』. 이렇게 넋두리하는 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귀에 들리지 않을테니 그냥 넋두리로 받아 넘겨버리지만, 이런 분은 틀림없이 죽은 후에도 부부로 다시 만나 천상생활을 할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부부보다 더 답답한 부부는 「더 이상 못살겠다」고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부부들은 부부가 영원하지 않다면 좋아할 것입니다. 고생스럽더라도 이생이 끝나면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한 면상을 보지 않아도 될테니까 좋아한다면 차라리 다행인데, 이왕 영원하지 못한 것, 좀 시간을 당겨서 살아있는 동안에 헤어지자면 골치 아파집니다.
부부가 일생을 살면서 자기 배우자에게서 항상 만족을 누리며 사는 부부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누구는 만족하기 때문에 사는 줄 아십니까? 지금 와서 어쩔 수 없으니까 그저 그러 나부다 하고 사는 거지요』 『자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삽니다. 나중에 애들이 다 큰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부부들이 자기 배우자에게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참 다행이다. 내가 혼자 살기 때문에 심술이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워야 할 자기 배우자에게서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때 이 세상 아무데서도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결국 만족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아무에게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주 말하지만 자기만은 자기 배우자가 제 입맛에 꼭 맞기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어긋나면 쉽게 실망한다. 그리고 서로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이혼하기까지 이른다. 신앙인으로서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대답은 쉽게 얻을 수 있을텐데…』.
하느님은 사람에게서 채울수 없는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인 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의 배우자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은 부활 후 하느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배우자가 내 기대에 어긋날 때마다 우리는 부활에 대한 기대를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부활 후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형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인연은 하느님과의 부자관계 안에 다 용해되고, 따라서 일곱 번 장가 든 사람도 또 일곱 부인도 다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일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배우자를 사별하신 분 이전 배우자에게 대한 미안한 생각으로 재혼을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전 배우자는 결코 시샘하지도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배우자로부터 누리지 못한 만족을 이미 하느님 안에서 누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의 영원한 배우자는 하느님 자신이시며 세상 사람과의 부부인연은 이미 끝났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배우자이십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부부들도 많습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겨 아끼고 위하고 사랑하고 무엇보다 용서함으로 주고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매일 노력하며 살아가는 부부들입니다. 이런 부부들은 독신자들이 부러워하는 부부입니다.
요즘 같은 일시 철에는 『신부님이 부럽습니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신부들이 「부러워하는 부부」들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신부들이 장가가고 싶을까봐 걱정스러워서 그렇게는 못 한다고요? 괜찮습니다. 부부들이 제발 잘 살아주기만 한다면. 내가 신부생활에서 가장 맥 빠지는 일은 내가 혼인 미사를 주례한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였습니다.
내가 「픽」 웃긴 했지만, 「영원한 내 사랑 나의 배우자」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코 길지도 않은 인생을 영원한 삶을 향한 디딤들로 여기고 여한 없이 알차게 살아보려는 희망찬 마음을 보는 듯 하기에 행복한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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