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군중들을 상대로 말씀을 계속하고 있었다. 군중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장차 하느님 나라 운영을 떠맡을 제자들이기에 그들은 지금까지 하느님의 집안을 잘못 이끌어온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들처럼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기 때문이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들을 닮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은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다. (대목 191 참조).
오늘 마지막으로 신신당부하시는 것은 그만큼 새 나라 새 예루살렘을 영위할 제자들에게 새로운 옮음의 길을 가야 할 의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교단을 차지하고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율법을 준 아버지이다. 그 후부터 이들의 생활은 모세의 율법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에 민족 전체가 포로로 잡혀갔다 나온 후 이 율법 하나에 지탱하여 삶을 유지하였다. 모세가 죽은 후에도 율법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하느님을 잘 섬기고 못 섬기는 표로 삼았다. 따라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율법학자라 하여 민중의 지도자가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율법학자는 에즈라이며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 모세의 율법에 통달한 선비였기 때문에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에즈 7, 6) 그 후 율법학자들은 최고 지성인으로 율법의 수호자로서 민중 앞에 나타났다. (집회 38, 24 이하 : 39, 6∼11). 그 후 이들의 교설은「옛 사람들의 전통」이란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예수시대에 그들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바리사이파는 이들 율법학자에 밀접하게 관련을 갖고 생겨난 종파이다. 마카베오시대에 적군 시리아를 예루살렘에서 격퇴시킨 후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 준수를 민족의 정수로 삼으면서 그들의 종교생활은 율법의 엄격한 준수파로 시작하였다.
이들은 처음 율법에 대한 충성파로 시작하여「경건한 자들」이란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그 열성이 도를 넘어 율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는 자들을 경멸하게 되었고 끝내는 이방인, 죄인, 이방인과 관계를 맺고 율법을 소홀히하는 유대인들을 유대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면서 자기네들은 이들과 구별되는 특정 계급임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들은 본래 제관 출신이 아닌 평민 율법학자들 단체로 시작하여(기원 전 140년경) 민중을 종교적으로 지도하는 큰 종파로 발전하였다(마카 전 7, 12∼25).
그들은 토라라고 하는 모세의 율법서는 물론이고 토라에 대한 해설서와 구전적 해설까지도 유대민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지키는 보호막으로 확정하고 일상생활의 자잘구레한 영역에까지 온갖 종교적 규제와 금지 조항을 613개 조로 묶어 이것을 지키는 것을 경건한 생활의 표로 삼았다. 이렇게 보통 사람과는 선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바리사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예수시대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과는 구별된다는 특권의식은 민중의 교육자로 자처하면서 콧대 높은 오만에 젖었고 율법을 아는 자기들과 율법도 모르는「쓰레기」들과를 엄격히 구별하는 사회를 조성하고 있었다. 결국은 그들의 가르침과 행동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태도는 당연시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잘못된 종교생활을 개탄하며 꾸짖으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도록 하는 계도권을 가지고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인정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로만 가르치고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지는 않는다. 남에게 지키도록 강요하고 자기는 안 지키는 것도 좋지 않지만 지키지 않는다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권력을 위하여 자기를 은폐하는 위선이다. 지키지 않고 가르치기만 하면서 위세를 떨치는 것 이것 또한 위선의 표이다.
그러니 그들의 성구갑을 이마나 팔에 달고 다니는 것(신명 6, 8), 옷단 네 귀퉁이에 술을 달고 다니는 것(민수 15, 37∼40 : 신명 22, 12), 랍비소리를 듣는 것,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 등은 열성의 표가 아니고 순수 인간적인 허영의 표가 되었다.
그들은 길에서 인사 받는 것조차 당연한 우월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것들은 제자들이 배워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