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지주일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실제로 깊이 참여 하는 성주간을 맞이하였다. 오늘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으로, 방금 성지가지를 들고 유대아 군중들이 했던 것처럼 환영행렬을 하였다. 예루살렘 입성-수난-죽음-부활 사건을 함축하여 기념한다.
오늘의 행사와 복음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무엇일까? 우선 성지가지를 든 환영행렬을 보자. 오늘 복음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도 깔아놓았다고 되어있다. 「옷을 깔아놓았다」는 것은 최대의 존경을 표시한다. 이들은 겉옷과 아래에 반바지 같은 속옷 하나만 입는다. 노새가 배설할 수도 있고 물이 워낙 귀한 사막이라 옷을 세탁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옷을 벗어 깔았다는 것은 최대의 존경을 표시한 셈이다. 나라에 국빈이 오면 비행기에서부터 환영식장까지 비싼 양탄자를 까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나귀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성지가지를 들고 큰 소리로『호산나, 호산나』하고 외쳤다. 성지가지는 종려나무라고 하는데 이 가지는 승리를 의미한다. 죽음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김대건 신부님 또는 순교자들의 영정이나 상본에 보면 성지가지를 들고 있다. 또「호산나」라는 말의 뜻은「우리를 구원하소서」이다. 이렇게 군중들은 예수님을 대예언자로 인정하고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환영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라자로를 살리신 사건을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열렬히 환영하던 그 군중들이 수난 복음을 읽어보면 갑자기 예수님을「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태도가 돌변한다. 세상 인심 고약하다. 아까까지도 환영하던 자들이 갑자기 죽이라고 아우성치니 말이다. 더군다나 예수님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까지도 합세해서 말이다. 참 기막힌 일이다. 어떻게 은혜 받은 자가 배신으로 그 은혜를 갚는단 말인가? 어찌도 그리 쉽게 변절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철저하게 배신당하셨다. 성서의 어느 구석을 찾아보아도 구명운동을 벌인 흔적이 없다. 가장 측근이었던 제자들도 뺑소니쳐버렸다. 베드로는 제자들 중의 으뜸으로 대표라서 그런지 멀리서나마 예수님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모닥불을 쬐고 있던 사람 하나가『저 사람도 그자들과 한패라』고 하자. 그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또 십자가상의 죄인까지도 그를 조롱했다. 이렇게 극도의 배신감을 맛보셔야 했다.
요즘 새 정부가 들어서서 개혁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을 위시해서 각 장관, 집권당의 간부, 국회의원들의 재산을 공개하고 있다. 그 액수에 그저 놀랄 뿐이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자들이 이제까지 해 온 짓들이란 고작 불법으로 엄청난 재물(부동산)을 획득한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개발되는 땅은 저희들이 제일 먼저 알테니 제일 먼저 차지하여 백배의 이익을 보자는 식으로 사들였을 것이다.
나라 다스리는 일보다 나와 우리당이 우선이고 서민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적당히 무마하면 된다. 정치란게 다 그런거 아니냐는 안일한 이기주의가 이들에게 이처럼 엄청난 돈을 숨기고 빼돌리는 불법을 자행하게 했다. 죽으면 고작 땅 한 평 필요하거늘 왜 이다지도 많은 재산을 챙겨 숨겨놨을가? 추측컨대, 외국에 자녀들 공부 시킵네 하고 빼돌려 놓고, 돈 빼돌려 놓고, 목떨어지면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그러는가? 비행기 타고? 그러면 돈 없고 가족도 여기에 남아 있는 대다수의 우리 서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삼면이 바다인데다 돛단배 한 척도 없는데? 결국 이 땅에 남아 있는 서민들이 나라를 지키고 가꾸어야할 것 아닌가? 우리 국민들이 민주의식의 후진성이 한심하다.
새 정부의「개혁」은 잘하는 일이다. 부디 제도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개혁의지를 실현하길 바란다. 소위「국민의 인기 얻기 위한 반짝 쇼」로 전락한다면 하나마나다. 재물의 공정한 분배도 실현 되어야 한다. 불법재산 압류해서 다른 사람이 챙기면 도로 마찬가지다.
오늘 성지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결심을 다짐하자. 유다인들이 겉옷을 깔고 성지가지를 들고 주님을 환영했듯이 앞으로 나도 항구히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뺑소니쳤던 제자들을 닮지 않고 성삼일 전례부터 잘 참석하여 계속 열심한 신자로 남아 있기로 말이다.
호산나 다윗의 후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만민의 왕이시여. 높은 데에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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