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들이 산에 갔다 오면서 갈꽃에 들국화를 섞어 한다발 꺾어다가 내 방에 꽂아두고 갔습니다. 이로써 나는 내 방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포시 가을 꽃다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보듬어 안으면서 얼굴을 갖다 대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지 이 가을의 느낌은 쓸쓸함과 어떤 아픔이었습니다.
갈꽃이 슬픈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마도 노래가사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 으악새(본래 으악새는 「억새」의 방언이며 여기서 산 갈대를 지칭함)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이 야생 산풀이 피운 꽃은 대지가 얼어 붙을 때까지 그냥 남아서 불어 닥치는 찬바람에 비명이나 신음소리같은 울음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그 생김새는 부드럽고 깨끗하며 따뜻해 보입니다.
이 갈꽃이 춥고 긴 겨울을 참고 견디어 내고 나면 봄부터 다시 생명의 물이 올라 싱싱하게 자라고 여름 내내 부지런히 성장하여 나중에 한 줄기 꼬부라진 하얀 꽃을 또 피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꽃은 노인이 되어 꼬부라진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나도 그리고 아무리 싱싱한 젊은이도 늙으면 백발을 머리에 쓴 한 그루 꼬부라진 갈대가 되는 것을…쓸쓸한 느낌은 이런 이유를 따지기 전에 이미 가슴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들국화를 보는 느낌은 절제된 아픔이었습니다.
이 자잘한 꽃들은 한창 생명이 왕성하던 봄 여름을 다 피하고 참고 기다렸다가 다른 꽃들이 시들기 시작한 가을에야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목련이나 개나리 진달래 같은 화사한 봄꽃들이 저마다 다투어 얼굴을 내밀 때도 결코 나서지 않았습니다. 초여름 장미나 모란과 파초처럼 화려한 꽃들이 자태를 뽐낼 때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백일홍이 혼자서 여름을 지배할 때도 모른척 했습니다. 바야흐로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필 무렵에야 들국화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들어냈습니다. 결코 서둘지 않으면서 참고 기다리고 절제한 꽃으로 이제사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고 그저 수수하고 보잘것 없는 들꽃입니다. 그러기에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아픈 느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전례주년의 마지막 두주간을 남기고 복음성경은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려줍니다. 아름다운 돌과 많은 예물로 꾸며진 성전이 무너지고 사방에서는 자칭 그리스도들이 나타나면서 혼란의 때가 올 것이며 결국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종말의 현장을 보는 듯 합니다. 어쩌면 예루살렘 성전보다 호화스런 백화점과 예물보다 더 많은 물건들, 그리고 휘황찬란한 장식과 과소비스런 화려한 행사들…무엇이나 다투어 경쟁하듯 합니다.
고급식당과 값비싼 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골프장은 항상 만원이랍니다. 밤이면 가는 곳마다 북적대는 인파와 번쩍이는 네온사인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습니다.
선거철히 가까와옵니다. 서로 얼굴을 먼저 내미려고 평소에 외면하던 외진 곳까지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저마다 자신이 이 나라와 국가를 구원할 유일한「메시아」라 목청을 높힙니다. 가히 혼란의 양상이라 말해도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복음의 말씀인 종말의 징후가 보입니다. 하지만 종말은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 와 있습니다. 종말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세대는 계속 이 종말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종말의 시기에 우리의 할 바가 무엇인지를 소박한 한송이 들국화 한테서 배우게 됩니다. 「절제」입니다. 다투어 앞에 나서고 싶은 마음을 참습니다. 남보다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 허영을 이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독선적 행동에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능력에 위축되거나 초라해 보이는 내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꾸준히 내 길을 갑니다. 그래서 다른 꽃들이 다 피었다 시든 다음 한송이 소박한 꽃을 피우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자기 분수에 따른 절제 밖에 이 종말적 혼란을 극복할 다른 처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갈꽃 또한 이 종말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진 추위와 바람을「끝까지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것」(루가 21, 19)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비록 세찬 바람에 시달려 신음소리를 낼지언정 그 아픔은 자기의 것으로 간직하면서 그래도 남에게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깨끗한 자태를 드러내 보이는 고결하기 까지한 갈꽃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말입니다.
이 스산한 초겨울 종말의 시기에, 어떤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기를 깨끗이 지키고 인내하며 이웃에게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도록 이 하찮은 들꽃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따라 생각해 본 연중33주일은 갈꽃과 들국화 축일이었습니다. 제단과 생활주변을 이 꽃들로 장식하고 이들이 말해주는 메시지를 새삼 음미하고픈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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