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피신처라 할 수 있는 배티는 충북 진천군과 충남 천안군, 그리고 경기도 안성군이 경계를 이루는 삼각점에 위치한 깊은 산골이다.
현재 진천에서 배티를 거쳐 안성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돼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인적이나 차량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해 전국 방방곡곡 거미줄처럼 도로가 뻗어있는 오늘날에도 그 고적함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박해시대에는 서쪽으로 안성 용인 서울, 남쪽으로는 목천 공주 전라도, 동쪽으로는 문경새재를 지나 경상도로 이어져 박해시대 대륙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처럼 각 지역과 쉽게 연결되면서도 깊은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우촌이 형성돼왔고 최양업 신부가 이 지역을 근거로 전국을 다니며 사목활동을 해왔다.
◆내륙교통 중심지 역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위치하고 있는 배티는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라고 불렀고 이는 다시 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됐다.
배티 인근에는 명승지와 성지들이 많이 있어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함께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안성에서 미리내 성지를 거쳐 용인민속촌과 자연농원, 또는 죽산 칠장사를 거쳐 양지에 있는 골배마실과 은이공소 터를 갈 수 있다. 또 남쪽으로는 유관순 기념관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온양온천이나 현충사를 가는 것도 가능하다.
배티를 가기 위해서는 우선 진천으로 가서 백곡을 거쳐 들어간다. 진천에서 백곡행 버스나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백곡에서 배티까지는 약 4km 정도이므로 도보로 순례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돌배나무 많은 고개
진천에서 18km 정도 위치에「삼박골 비밀통로」라는 팻말이 나오는데 그 중간에 백곡공소가 길 왼쪽에 서 있다. 여기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남원 윤씨와 밀양 박씨의 묘가 있는데 이들은 친올케 간으로 그 후손이 현재 평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순례객은 여기서부터 순교 선조들의 향기를 조금씩 짙게 느낄 수 있다.
「삼박골 비밀통로」팻말을 지나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여기서 배티까지는 약 2km로 걸어서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길은 박해시대에 배티로 넘어가던 비밀통로였는데 무성한 수풀 사이로 난 좁다란 길이 믿음 하나로 험한 산길을 마다 않던 당시 선조들의 가쁜 숨결을 느끼게 한다. 삼박골은 베르뇌 장 주교와 패롱 권 신부가 박해를 피해 은신했던 교우촌으로 현재 공소는 없어지고 순교자 이진사 부인과 딸의 묘소만이 남아 있다.
팻말이 서 있는 곳에서 안성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드디어 배티성지가 나온다. 성지로 오르는 산길 맨 앞에는「순교현양」이라고 새겨진 돌비석이 먼저 순례객을 맞는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꺾지 않았던 선조들의 굳은 정신이 단단한 돌비석을 통해 느껴진다.
◆베르뇌 주교 피신처
왼쪽으로 사제관과 수녀원을 두고 시작되는 오솔길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14처가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각 처가 모두 하나씩의 커다란 맷돌에 새겨져 있어 당시 박해의 육중한 무게를 보여주는 듯하다.
14처가 끝난 곳에는 자연석 그대로의 제대와 함께 나무 밑둥을 잘라 만든 야외성당이 있고 산기슭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다. 제대 위의 촛대 역시 14처와 마찬가지로 맷돌로 만들어져 있고 제대 앞과 주위에는 나무 등걸로 이루어진 좌석들이 늘어서 있다.
◆박해 때 50여 명 순교
최양업 신부가 머물던 공소 터와 무명 순교자의 묘를 가기 위해서는 성모 상을 지나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등산로를 넘어야 한다. 이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오솔길을 다시 내려와 배티고개를 향해 약 4백m 정도 올라가면 길가에 초소가 있고 오른쪽으로 집이 몇 채 보이는데 그 뒤가 바로 최양업 신부가 여름 장마철이면 머물던 공소 터이다.
1년에 5천 리에서 7천 리까지 걸어다니며 심할 때에는 한 달에 겨우 나흘 밖에 못자기도 했다는 최 신부는 전국을 앞마당처럼 다니다가도 장마철에는 여기에 머물며「천주가사」를 집필했고 기도서인「성교공과」를 번역했다. 그러나 그가 기거하던 바로 그 공소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직 그 자리를 알려주는 녹슨 팻말만이 옆으로 기울어진 채 남아 있어 후손들을 부끄럽게 한다.
여기서 고갯길을 따라 9백m 정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무명의 숨은 꽃 (9인 묘)」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이곳은 배티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던 선조들이 포졸들에게 잡혀 안성으로 끌려가다가 집단으로 순교한 곳이다. 그런데 실제로 묘소를 세어보면 모두 14기에 이른다.
배티는 1868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50여 명의 순교자를 냈는데 그 중 29명은 교회 역사에 기록돼 있고 나머지는 이곳의 순교자와 같이 배티 일대에 그 묘소들이 산재돼 있다.
◆순례 코스
■도보 순례
△삼박골-(비밀통로 경유)-배티성지(약 40분 소유)
△사제관-수녀원-14처-야외 제대-성모 상-공소 터-무명 순교자의 묘(약 1시간 소요)
△사제관-수녀원-14처-야외 제대-성모 상-6인 묘-무명 순교자의 묘-공소 터(약 2시간 소요)
■차량 순례
▲승용차 이용시
△경부고속도로=안성 IC-안성읍-배티-배티성지. 단 안성읍에서 3백13번 지방도로 진입하려면 안성군민회관에서 3백m쯤 지난 지점에서 우회전해 옥천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야 한다.
△중부고속도로=진천 IC-진천읍-백곡면 소재지-삼박골 입구-배티성지
▲대중교통 이용시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진천행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5회 있으며 각각 1시간 50분, 1시간 40분 소요된다.
진천읍에서 백곡면 소재지까지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백곡에서 배티성지까지는 버스가 없어 도보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 9천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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