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태동은 평신도 사도직 운동에서 출발했다. 2백년 전 명도회를 시작으로 현재 주교회의 전국 인가단체만도 24개나 되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교회의 평신도 제단체는 교회사는 물론 한국사에서 가장 가톨릭다운 모습을 증거하고 시대의 햇불ㆍ복음화의 길잡이로서 그 면모를 구축해왔다.
본보는 창간 66주년을 맞아 신심의 시대에서 영성의 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 평신도 제단체의 전통성과 맥을 추적함으로써 미래교회로 향한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그 역사의 현장을 정리해 본다.
1795년 명도회 창립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평신도 사도직의 역사이다.
평신도 사도직이란 가장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도래케하고 세상 구원을 위한「하느님 백성」인 평신도들의 모든 교회적 활동을 말한다.
피와 순교로써 자신의 사도적 열의를 증거한 한국교회 신앙선조들은 일찍부터 개인적 신앙활동을 넘어서 단체성을 띤「명도회」(明道會)를 조직, 신앙운동을 전개했다.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회」라는 뜻으로 1795년 조선땅에 입국한 첫 선교사 주문모 신부와 정약종이 조직, 전국 규모로 성장했던 명도회는 한국교회 평신도 단체의 모태다운 엄격한 규약과 신심행위로 복음전파와 교세확장에 큰 영향을 미쳐 오늘날까지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 단체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명도회를 중심으로 대중적 신심의 폭과 깊이를 넓혀온 한국교회는 조선교구가 설정되면서부터「예수 성심회」「성모 성심회」「매괴회」「성의회」「성가회」「전교회」등 여러 사도직 신심단체들이 태동, 교회기초와 한국 평신도 운동의 정통성을 이어왔다.
교회 재건과 신앙운동
신앙 자유 이후, 가톨릭 청년회, 학생회, 부인회 등을 통해 내실화를 꾀했던 한국교회는 박해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일제와 공산당의 침략으로 다시금 좌절의 시련을 겪게 됐다.
6ㆍ25는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중 괄목할 것은 전란으로 인생무상을 경험한 민중과 지식인들이 정신적 안식처와 지성적 구도(求道)를 천주교회 안에서 찾으려 한 점이다.
휴전 후 매년 영세 입교한 신자수가 수만에 달하고 58년에는 무려 7만명의 신 영세자를 배출한 한국교회는 새로운 포교방법과 적극적이고 폭넓은 선교활동, 교회 조직의 체계화를 위해 다양한 신심단체들을 도입, 평신도 운동을 활성화시켰다.
이때 도입된 대표적인 평신도 단체가「레지오 마리애」와「가톨릭 노동청년회」(JOC)이다.
한국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대표격인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31일 광주 교구장 현 하롤드 주교의 지도로 광주교구 목포 산정동본당과 경동본당에서 처음으로 발족됐다.
일주일에 2시간 이상 사목활동을 도와 선교ㆍ봉사활동을 펼치는 레지오 마리애는 이후 전국 교구와 각 본당으로 확산, 국가 단위 평의회인 광주「중재자이신 마리아」세나뚜스(58ㆍ7ㆍ13)와 서울「무염시태」세나뚜스를 탄생시켰고 현재 44만7천3백25명(협조단원 포함)에 달하는 단원을 확보하고 있다.
80년 1월22일 제1차 민족 복음화 대회에 이어 91년 5월 레지오 마리애 창설 70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마리아의 군대 한국 세나뚜스는 명실상부한 한국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기수로서 발판 구축은 물론, 민족복음화 사업에 빼놓을 수 없는 사도직 단체로 성장한 것이다.
1958년 JCO 창립
사회와 경제의 변화에 따른 노동문제가 절박한 사회문제임을 직시한 한국교회는 58년 11월 당시 가톨릭대학 박성종 신부를 지도신부로 JOC를 결성했다. 전국 조직된 JOC는 노동현장의 근로조건과 환경개선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구조적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을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시키는데 따르는 희생과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이나 지배계급으로부터 좌경, 용공으로 오인 받으면서까지 노동사목을 실천했던 한국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67년 강화도 심도직물 노조사건, 78년 인천 동일방직 분규 등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가 항상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행동하고 노동자의 권익옹호에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줬다.
열린 교회 열린 세상 지향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된 60년대의 세계교회가 그랬듯 한국교회도 개방과 개혁, 쇄신의 홍수 속에 잠겼다.
62년 3월10일 교계제도를 확립한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평신도들의 고유한 사명과 사도직을 강조하고, 평신도 본연의 역할과 품위를 분명히 하여 사회성이 강한 신자 제단체들을 잇따라 출현시켰다.
세상밖에 있던 종전의 교회가 아닌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로 변화와 쇄신을 꾀한 한국교회의 적극성을 안고 출범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들은 모름지기 사회가 부딪치고 있는 문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복음과 세상의 구원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한국교회는 68년 11월30일「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결성을 필두로「한국 가톨릭 언론인 협의회」(68ㆍ6ㆍ11)「한국 가톨릭 중등학교장회」(68ㆍ6ㆍ7)「한국 가톨릭 의사협회」(69ㆍ3ㆍ31) 등 전국 사도직 단체를 발족하고 평신도 운동의 획일성을 지양하고 사도직 활동의 다양성을 꾀했다.
열린 세상, 열린 교회로 사회참여 의식을 키워온 한국교회는 군사독재와 경제 제일주의에서 비롯된 인명경시, 물질만능풍조, 각종 사회 부조리에 과감히 맞서 정의를 실천하고, 소외계층과 억눌린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앙적 가치를 일깨워주는 활동성 강한 평신도 단체들을 발족시키기 시작했다.
급격히 변모하는 교회의 의식구조 속에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는 61년 1월5일「한국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창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빈민구제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61ㆍ11ㆍ3) 「한국 가톨릭병원 협회」(67ㆍ9ㆍ22)「한국 가톨릭 농민회」(66ㆍ10ㆍ17) 「도시산업 사목 연구회」 (70ㆍ3ㆍ24)를 발족, 더욱 체계적인 사회복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교회 내실화와 신자교육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신심 운동과 영성계발을 위해 각종 신심단체를 도입한 한국교회는 꾸르실료를 도입「한국 꾸르실료 협의회」를 창립(67ㆍ5ㆍ4)함과 동시에「프란치스꼬 재속회」를 재발족하고「한국 MㆍBㆍW 추진회」「마리아의 푸른군대」「훠꼴라레」70년대「성령쇄신 봉사자회」「성서모임」을 결성, 평신도 신심단체 전성기를 구가했다.
60년대 평신도 사도직 단체는 또한「가톨릭 사회복지회」「한국 가톨릭 노동장년회」「UNDA KOREA」를 결성하는가 하면「정의구현 사제단」과 연계, 인간존엄성을 일깨우는 사회정의 운동에 앞장서 공의회 정신의 정통성을 이었다.
80년대 나눔의 교회 구현
「정평위」「인성회」「M ㆍE」「행가운」등을 창설해 가정과 사회로부터 신앙부흥시기를 구가했던 한국교회는 2백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모시고 103위 순교성인을 탄생시키면서부터 나눔과 생활 실천의 성격이 강하고 전문성을 갖춘 후원회, 친목회 등 새로운 면모의 평신도 단체들을 구성했다.
평협,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등이 대표했던 평신도 사도직 제단체가 70년대 초반부터 군중후원회, 여성연, 실업인회, 교도사목회 등을 태동시키면서부터 다양해졌고, 80년대에 들어서 사진가 협회, 운전기사 사도회, 세무사회, 간호사회, 의류협회 등 각 분야 직능별 전문성을 갖춘 단체들로 확산됐다.
2백주년 기념행사와 세계 성체대회 등 굵직한 행사를 치뤄낸 80년대 한국교회는「받는 교회」에서「나눔의 교회」로 위상을 드러냄에 따라 평신도 운동은「한마음 한몸 운동」을 대표로 하는 실천적 사도직 활동단체들을 배출했다.
가톨릭 사회복지회, 아동복지협의회 등을 창설하고 장애인도 한 몫 하는「농아선교회」「맹인선교회」등을 설립, 가난과 고통을 분담하는 나눔의 교회, 나눔의 단체로 쇄신한 것이다.
80년대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또 다른 특징은 동호인 단체의 확산이다. 교세확장과 교회문화 운동으로 두드러진 신자 동호인 단체는「가톨릭 문우회」「언론인회」「미술가협회」「법조인회」「미용인협회」등 수많은 직장, 직능별 신자 제단체를 탄생시켜 90년대를 주도할 신자단체로 기틀을 조성했다.
2천년 복음화를 지향
『평신도 사도직은 그리스도 신자로 불리웠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교회 안에서 절대로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Ⅰ).
현대교회는 평신도의 열성을 요구하고 보다 활발하고 광범위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요청한다.
「2천년대 복음화」를 향한 시대적 부름은 평신도들에게 한국 초대교회의 평신도 사도직 운동과 같은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땅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동방으로부터 빛과 영성을 갈구하는 세계적 목마름에 청량제로서 한국 평신도 사도직 제단체들은 미래교회를 주도해야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미래교회의 주인공이 되고 동방의 빛으로서 또 한 번 세상 앞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초대교회의 사도직 운동의 전통과 맥을 잇는 쇄신과 개혁의 새 바람이 일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발전에 이바지해온 대표적 기존 단체들도 새 시대를 대비한 변화와 개혁이 없다면 퇴보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초대교회부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구자로서 세상 앞에 자리했던 한국교회 평신도 사도직 제단체들의 활기찬 모습을 회상하며 그 역사적 정통성과 함께 미래교회의 초석으로서 거듭 태어날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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