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1등, 이대로는 안 된다. 독자들도 우리가 세계사회 속에서 갖고 있는 불명예스런 1등이 어떤 것들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 사망률, 40대 사망률, 고아수출 등등. 그렇지만 독자들도 인식하지 못한 우리가 간직한 부끄러운 1등은 차마 열거할 없을 정도로 많다. 본보는 창간 66주년을 맞아 이런 우리의 부끄러운 1등의 모습들을 찾아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개선점을 찾고 모두의 힘을 합쳐 고쳐 나가는 노력을 시도해 본다. 총론인 이번호에서는 어떤 부분에서 열거해보고 앞으로 각 주제별로 계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그 문제점과 개선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찾아나갈 것이다.
우리는 유난히 세계 최고, 세계 최대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1등을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이 가진 1등에 대한 집착(?)은 어느 장소, 어느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남다른 것은 사실이다. 건물을 짓더라도 세계 최대 규모에 최단기에 완성된 건물이어야 직성이 풀리고 스포츠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야 어디 말을 붙여 볼수 있다.
일편에서는 1등에 대한 우리 민족의 남다른 욕심과 의지가 바로「한강의 기적」, 선진국 문턱에 선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 외형적인 면에 너무나 치중한 나머지 정작 명예로운 1등을 차지해야 할 부분에서는 부끄럽게도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는 1등 의식 속에 잠재한『나만은 …』이라는 이기심과 여기에 기인한 질서의식의 부재가 우리의 사회 곳곳의 모습을 어둡게 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자동차 보유율을 자랑하는 우리가 교통사고율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성직자라도 핸들만 잡으면 악마로 변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만큼 우리나라의 교통질서는 가히 살인적이다. 경찰청이 발표한 지난 91년 전체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6만5천9백64건으로 이 중 1만3천여 명이 사망했으며 33만1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루 평균 36명이 숨진 셈이며 경기도 광명시만한 인구가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얘기가 된다. 교통전문가는『이 같은 하루 평균 사상자는 월남전과 6ㆍ25전쟁 때의 1일 평균 사상자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라고 지적하고『국민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31ㆍ1명으로 남아공(36명), 프로투갈(31ㆍ5명)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수치에는 별 차이가 없다. 왜 이렇게 교통사고율이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는가? 원인으로 운전자의 질서의식 부재를 손꼽는다. 운전자의 안전운전 불이행이 전체 사고의 60%를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지난해 교통사고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을 벌인 끝에 사고율은 조금 줄은 듯 했으나 오히려 자동차 보험처리 건수는 91년보다 늘어나 우리의 질서의식 부재가 어느 정도인지 더욱 충격을 주고있다.
■특히 교통사고와 함께 자동차가 증가하면서도 또 다른 불명예를 안겨준 것이 바로 대기오염이다.
맑은 하늘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희뿌연 하늘을 보기가 훨씬 수월한 서울의 대기오염은 멕시코시티에 이어 세계 2위. 세계보건기구(WHO)보고서에 의하면 서울은 아황산가스(So2)와 먼지 등 2개 항목이 권고치(아황산가스-0.015~0.023PPM, 먼지-60~90mg/㎡를 두 배 가량 웃돌고 있다. 이들 오염물질은 그래도 꾸준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자동차 연료에서 배출되는 질소 산화물, 일산화탄소 등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나타나 서울의 스모그 현상의 발생빈도를 더욱 잦게하고 있다. 자동차 한 대당 주행거리가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아무 때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우리의 교통문화가 대기오염의 주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로 빽빽한 서울 도심을 잠시 돌아다니다 보면 목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와이셔츠 목부분이 시커멓게 되는 것은 물론 손을 씻어 봐도 마치 연탄을 만진 것 같이 검은 구정물이 나온다.
최근 보고된 우리나라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대기오염 등에 의한 폐암 사망률이 점차 증가,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대기오염 뿐 아니라 폐암을 유발하는 흡연율 또한 세계적 수준.
91년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소비한 담배는 1백13ㆍ5갑에 이르는데 이는 모든 국민 한 사람당 하루 평균 6개피를 피운 양이다. 더욱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청소년 흡연자의 증가로, 한국 금연 연합회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 고3 남학생 중 48%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의 18%, 26%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여서 건전한 청소년 정신을 자랑했던 우리나라에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망률에서도 우리가 차지한 부끄러운 1등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뿐 아니라 40대 사망률, 간암 사망률 또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 기획원 조사 통계국이 발표한「89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보면 인구 1천 명당 40대 남자 사망률은 8ㆍ1명으로 우리나라의 비슷한 사망수준을 나타내는 칠레(5ㆍ8명), 홍콩(2ㆍ9) 등에 비해서도 높을뿐 아니라 일본(2ㆍ8명) 미국(4ㆍ2명)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김일순 교수(연대 보건대학원)는『40대 사망률은 계속 감소중에 있으며 이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선진국 보다는 높으나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개발도상국과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인 40대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직장 남성들의 장시간 노동, 스트레스 등 직장인의 만성피로에 의한 것임을 짐작케 해 건강에 대한 의식고취가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불규칙한 생활에 따라 발생하는 간암 또한 사망하는 숫자는 인구 10만 명당 23ㆍ8명으로 일본(13ㆍ9명), 미국과 영국(1ㆍ4명)보다 훨씬 높다.
■올해 책의 해를 맞아 서점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책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세계 사회속에서 보면 얼마나 국민들이 책을 안 읽으면 책읽는 해를 선정했는지 의문을 갖겠지만 사실 우리 국민들은 책 안 읽기로도 부끄러운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국민들의 61%가 한 달 동안 주간지, 월간지 이외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경제적 부에 가치를 두고 1등을 향해 달리면서도 정신적인 투자나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공도서관의 국민 1인당 장서수를 놓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더욱 부끄럽다. 0ㆍ15권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일본, 프랑스, 스웨덴, 미국 같은 나라들과는 상대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튀니지아(0ㆍ17권), 말레이시아(0ㆍ21권)보다도 못한 실정이다.
청소년 독서율 또한 저조한 형편인데 이것은 청소년들이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 속에서 과외활동이나, 학교공부 등으로 독서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교육열은 인구 1만 명당 4백7명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에서도 엿 볼 수 있다.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나 잘못된 교육열로 인해 올해 초 교육자, 학부모, 심지어는 대학생들까지 합세한 대규모의 입시부정이 저질러져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학부모의 교육열을 높이든, 높은 교육열이 입시 위주의 잘못된 교육을 초래하던지 간에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개혁과 투자는 제일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고아수출 1위국이다. 고아 수출국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96년부터 해외 입양이 전면 중단된다.
국내입양을 원하는 부부가 입양아보다 많은 실정이지만 딸과 정상아만을 원해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은 줄고 있지만「버려지는 장애아」는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 6ㆍ25전쟁 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입양된 장애아는 고작 18명에 불과했다. 그동안 장애아들은 거의 해외 입양돼 고아 수출국 1위의 오명을 얻는데 일조했다. 3년 앞으로 다가온 해외 입양 전면금지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며 이로써 고아 수출국 1위라는 불명예를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드높아지고 있다.
정상적인 부모 사이에서도 버려지는 아이가 생길 수 있지만 특히 성폭력 등의 원치 않는 임신으로 생겨난 아이들도 많다.
■그나마 태어나는 아이들은 은총이다. 빛을 보기도 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죽어가는 태아들은 년간 1백50만 명 이상으로 추정, 명확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낙태반대 운동으로써 서명운동 및 홍보활동 등을 활발히 펼쳤었다. 그러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각성은 아직도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어 교회가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대사회적으로 꾸준히 홍보 및 교육사업을 실시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하다.
■낙태뿐만 아니라 성폭력 또한 세계 3위. 그러나 발생률 통계의 기본적인 자료인 성폭력 고소율은 고작해야 전체 건수의 2ㆍ2%로 실제적으로 발생한 사건은 년간 32만여 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적인 수치를 놓고 보면 미국ㆍ스웨덴을 제친 세계 금메달감. 비정상적인 경제성장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통해 향락산업이 판을 치게 됨으로써 성의 상품화와 성폭력 범죄를 더욱 유발하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김보은ㆍ김진관 사건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대책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강구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성폭력 특별법 제정, 피해여성의 피난처 및 사회 보장제도 실시, 건전한 성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주장하고 실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우리가 가진 부끄러운 1등은 또 있다.
■산재발생율 또한 어두운 모습의 하나.
91년 한 해 만도 12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고 있으며 이로 인한 손실이 년 3조5천억 원에 다다른다. 대한 변호사 협회의 90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재율은 근로자 1백 명당 2ㆍ47명에 이르러 일본(0ㆍ61명), 대만(0ㆍ7명), 싱가포르(0ㆍ93명)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우리가 꼭 1등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에는 그다지 순위가 중요하지 않다. 세계「최대」와「최고」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 이면에는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들보다 차마 숨기고 싶은 모습들이 더 많다는 놀라운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최근 범사회적으로 벌어진「쓰레기 줄이기」운동은 우리에게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숨기기보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해 나감으로써 더욱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1인당 쓰레기 배출량 2ㆍ3㎏로 세계 1위를 달리던 우리가『내가 먼저 실천하고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자세』로써 단 3~4개월 동안 서울, 부산 등 6대 도시의 하루 쓰레기 발생량을 5만3천3백17t으로 10ㆍ8%를 줄였다. 이제는 1등 의식 속에 잠재한 이기심과 나태함을 버려야 한다.
「쓰레기 줄이기」운동이 주는 교훈처럼『나 만은』이 아니라『나 먼저』, 이웃과 함께 하는 자세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부끄러운 1등의 모습들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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