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마지막 주간 화요일은 대토론의 날이었다. 산상교훈을 펴시던 날(마태 5, 1∼7, 29:루가 6, 20∼7, 1), 비유 설교의 날(마태 13, 1∼53:루가 8, 4∼18), 요한 복음서의 설교와 함께 오늘의 토론은 예수의 전교 중 중요한 도리 계시의 날로 꼽는다.
예수의 교도권 문제(대목 288), 납세문제(대목 293), 육신 부활의 문제(대목 294) 등을 놓고 유대아교의 지도자들과 학자들과 벌인 토론에서 적대자들은 의도와는 달리 한 수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탄하기까지 했다. (마르 2, 28ㆍ32: 마태 22, 34∼35). 예수께서는 여기서 그들의 고질적인 종교적 구원개념이 얼마나 편협적인가를 깨우쳐 지적하신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직도 성전 안에 모여 있었다. 이번에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당신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메시아는 누구의 아들(후예)이라고 하였소』그들은 서슴없이『다윗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신념은 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율법학자들이 역설하던 믿음이었다.
마르꼬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질문『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다윗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의 칭호는 솔로몬의 시편 17장 21절에 처음 나오지만 구약성서 사무 하 7, 12 이하:시편 89, 20∼37:이사 9, 2∼7:11, 1∼9:예레 23, 5∼6:33, 14∼18:에제 34, 23∼24:37, 24 등에 다윗의 아들=메시아라는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랍비문서에는「다윗의 아들」은 당연한 메시아의 칭호로 전해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며 메시아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생각을 촉구하셨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기를「너는 내 오른 편에 앉아라. 이제 네 원수들을 내 발 밑에 발판으로 삼아 굴복시킬 것이다」라고 했는데 다윗은 이 말을 할 때 성령의 영동을 받았다. 다윗의 메시아를「내 주님」이라고 불렀다면 그 메시아가 어찌 자기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느냐』
다윗의 주님과 유대아인들이 생각하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가 동일인이라는 생각은 분명히 모순된 것임을 구약성서는 증언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유대아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열망해왔고 그 메시아는 자기 나라를 구원할 위대한 왕, 지상에서 위풍을 떨칠 세속적인 왕으로 기대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의 왕국시대가 다시 도래하기를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다. 그러니 그들의 메시아관도 지상적이고 세속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시편 110장 1절의『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기를 』이라고 한 대목에서 첫번째「주」는 주 야훼를 가리킨다. 유대아인들은 하느님을 직접 부르기를 꺼려「아도나이」라는 말을 주님이란 말 대신 썼다.
두 번째「주」는 히브리 본문에서「아도니」라는 말인데 이 말은 왕을 신성시하여 부른 호칭으로「주 임금님」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 시편을 읊을 때 누구를 두고「두 임금님」이라고 불렀겠는가. 유대아인들은 이「주 임금님」을 메시아로 생각하였고 그 「주 임금님」은 다윗의 아들이라고 동일시하였다. 그것은 자기네들의 원수를 짓밟을 능하신 분을 다윗 왕가에서 기다리는 열망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이 말씀을 하신 예수의 본뜻을 파악해야 할 때가 왔다. 예수는 평생 자기 자신을 다니엘서 7장 13절의 예언어「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적대자들은 그를「목수 요셉의 아들」(마태 13, 55)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사람의 아들」「목수 요셉의 아들」은 마태오 복음서 첫 장에서 다윗의 아들임을 명시하였고 치유 받은 병자들이 예수를「다윗의 아들」이라 불렀으며 제자들도 여러분 그분이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이시라고 고백하였다.
이 고백은 예루살렘 입성 때에 군중이 예수를 개선장군처럼 환호하며「다윗의 아들, 호산나」라고 외쳤다. 이제 다윗이 자기 아들(후손)을「내 주」라고 부른 불합리성을 핏줄을 나눈 아들이란 개념을 넘어 영성적으로 이해하면서 풀릴 수 있는 하나의 예언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로마서에서 밝힌 대로 예수는『인성으로는 다윗의 아들이며…신성으로서는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된』분이시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러한 뜻으로 시편 110장 1절을 여러 번 인용한다(사도 2, 34∼35:고린 전 15, 15:히브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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