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토착화
청춘남녀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읽어볼 수 있는 문학적인 소재이며 그 줄거리들이 대개는 엇비슷하다. 그러나 원작의 낱말을 사전식으로 번역해 놓으면, 이야기의 맛과 멋이 많이 떨어질 뿐더러 때로는 원저자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원저자의 중심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해 있는 표현을 빌려 원저자의 사상을 전달한다면 훨씬 쉽게, 또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작품은 단순히 낱말로만 꿰맞추어진 글짓기가 아니라 저자와 그 시대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종교적인 배경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그 중의 일부는 행간에 숨어있고 일부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재는 비슷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와 춘향전 이야기가 서로 다른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리스도교를 어느 한 문명의 일정한 형태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되지 않고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문화들과 혼동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민족의 전통과 관습을 필요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러한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본의 아닌 시행착오와 논쟁과 극심한 갈등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도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했다. 즉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에 익숙해 있던 유대아 그리스도인과 이교인 출신 그리스도인을 사이의 격렬한 논쟁과 갈등(사도 15, 1∼35)을 겪은 후에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로부터 구별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지중해 연안의 희랍-로마 문명권에 전파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설교이면서도 라틴어를 사용하는 라틴 교부와 희랍어를 사용하는 희랍 교부의 표현 방법이 달랐다. 교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복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았던 지성인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라도 바치려는 열정적인 신앙인으로서 자기 나라의 전통과 관습에 정통했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선포된 그리스도교 복음의 근본정신을 유대교의 외적인 형태와 구별하여 자기 나라의 문화적인 전통과 관습에 접목시킬 줄 알았던 토착화의 선구자들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선교지에서 어떻게 선포되어야 하는지를 가늠케 하는 기본적인 정신의 토대라고 생각한다. 즉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본성을 조금도 손상하시지 않고「완전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듯이 그리스도의 복음도 다른 문화권에서 그렇게 전달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교 복음의 근본정신을 전혀 흐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 지역 사람들에게「유대인의 야훼」나「유럽문화의 신」이 아니라 선교지역 사람들의 역사와 전통 속에 함께 계셨던「우리 모두의 고마운 하느님」이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통일이라는 중세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중세의 획일주의적인 종교정책으로 원주민들을 강압적으로 개종시켜 나갔다. 이러한 강압적인 개종정책을 신성한 의무로까지 생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자들과 선교사는 초기에 업무상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원주민들에게는 정복자들과 그리스도교가 똑같은 집단으로 이해되었다. 강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세례는 받았지만 본인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회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미 소개된 도미니코 회원인 바르똘로메오데 라스까사스는 강압적인 개종정책을 버리고 먼저 원주민들에게 인간의 품위를 존중하면서 온화한 방법으로 복음화할 것을 주장하고 그 자신이 인디안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선교방식은 강압적이었고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 종교를 고려하지 않고 유럽식으로 그리스도교를 이식하려 하였다. 그 결과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에로 인도하는 종교라기보다는 유럽 문화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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