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독서(이사 35, 4∼7)는 유배생활 전후로 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가 들려주는 구원의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의 자녀가 죄를 지을 때에도 그 곁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이스라엘은 일찌기 하느님의 계명에 불충실했기 때문에 혹독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백성은 포로로 끌려가서 참혹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좌절한 백성에게 희망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구원의 날이 언제고 온다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그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여기서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백성의 모든 소망과 꿈이 그날이 오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꿈을 간직하게 되었으며 그날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오려면 먼저 그분이 와야 합니다.「그분」이 와야「그날」이 옵니다. 그분은 즉 메시아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몇백 년이 지나도 메시아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옛날 이사야의 예언이 과연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묘한 것은 사람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그러나 막상 메시아가 왔을 때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엄청난 능력을 보면서도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일찍이 세례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자기 백성들이 기다렸던 메시아가 과연 예수님 그분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봤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분이 바로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때 예수님은『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너희가 듣고 본 대로 전하거라. 소경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걸어다니며 귀머거리가 말을 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
이게 무슨 말씀인고 하니 그러한 것들이 바로 이사야가 말한 구원의 날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표징을 통해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던 그날의 그분이며 메시아요 꿈의 완성자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귀 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이야말로 백성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른 의미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집스럽게도 세속적인 차원에서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그날』을 현세적인 사건이 만족되고 해결되는 날로만 믿고 기대했습니다. 즉 나라가 해방되고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며 사회가 안정된 질서를 찾게 해주는 그분을 기다렸는데 예수께서는 그 문제에 있어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거부하고 지금도 여전히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모순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어떤 열심한 부인이 있는데 갑자기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 안 나오는지 사람을 시켜 알아봤더니 아들이 대학에 떨어져서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예수님이 안 들어 주시니까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눈 먼 이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냉담자 방문 때에 한 형제가 그랬습니다. 자기가 30여 년 전에는 아주 열심했답니다. 성당에 다니는 재미로 살았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 나옵니다.『왜 안 나오느냐』고 물으니까 쉬었다 나온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구호물자 나올 때 구호물자 받는 재미로 성당에 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실제로 깨닫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습니다. 성서에 보면 그래서『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얘기해도 못알아 듣기 때문입니다. 자기 편견, 자기 아집에 빠져 있기 때문에 진실된 것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귀가 트여야 합니다.
유대인이 수백 년 동안 기다렸던 참 메시아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우리가 평생 찾고 만나야 할 주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인간의 어떤 문제도, 세상의 어떤 모순도 다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내 계산으로만 그분을 바라본다면 그 신앙은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날이 구원의 날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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