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잔에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의 주인공인 로젤리오 폰 앨리 신부는 벨기에 출신으로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엘살바도르에 파견된 선교사이다. 이 평범한 신부가 도시빈민지역에서 그리스도 신자공동체(BCC)를 만드는 활동을 통해 이 나라의 억압적 현실을 접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필자인 로뻬스 비질은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정치현실과 교회에 대해서는 얼마전 영화까지 만들어진바 있던 로메로 대주교의 생애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고위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엘살바도르 민중의 참상과 가난한 처지에 공감하고 억압적 정치권력과 지주들에게 대항하는 교회의 한 단면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중남미의 진보적인 사제들이 해방운동에 동참하면서 민중속에 뿌리내리고, 그들의 삶과 투쟁 그리고 죽음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깊숙히 파헤치는데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 책은 가난한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던 한 사제가 정치권력과 군대에 의한 엄청난 폭력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얼마나 자신의 존재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폰셀리 신부는 부자와 권력앞에서「창녀가 된 교회」속에서도 복음적 신실성을 통해 어떻게 하느님께로 가야 하는지 민중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배운다. 보수적이라고 놀림받던 로메로 주교가 혁신적인 예언자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일관된 정직성 때문이었다』고 그가 고백하듯이 폰셀리 신부는 민중 앞에서 매우 겸손하고, 복음적 확신에 대한 정직한 태도를 통하여 「가난한 자들의 보호자이신 하느님」을 맛볼 수 있었다. 그 신부는 삶과 죽음의 선택이 요구되는 시정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 다른 선교사들처럼 엘살바도르를 떠나지 않고, 파라분도 마르띠 민족해방전선의 활동지인 모리잔 전선에 남기로 결정한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복음적 명령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복음이 삶과 구체적으로 맞닥뜨려지면 우리를 얼마나 두렵고도 비장한 구원의 기로에 서게 하는가?
전장에서 폰셀리 신부는 「참된 전례」 와 「해방의 영성」을 체험한다. 하느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든 아니든 헌신적으로 동지들을 먼저 생각해주고 거친 음식이나마 나누어 먹는 성사를 체험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우리가 쉽게 입에 올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된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승리하는 믿음」에 대하여 경축하는 복음적 여유를 맞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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