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도 민주적 방식이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작은 단체들도 다 선거를 해서 단체장을 선출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한가지 사실은『나는 능력이 없어 못한다』 『나는 시간이 없어 못한다』말하던 사람들도 막상 선출이 되고 나면『나를 뽑아줘서 감사하다. 힘이 모자라지만 힘껏 해보겠다. 옆에서 많이 도와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또 능력이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잘해 나갑니다. 역시 속담대로 「하느님은 직책을 준 자에게 지혜도 준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의 사도직에 참여하는 분들의 모임에서 그 대표를 선출하는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규정에 의하여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어야 하는데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몇 번이나 토의를 다시 하고 기도하고 투표해도 중간에서 한 표만 왔다갔다하고 나머지는 부동이었습니다. 새벽 4시까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다음 날로 미루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 참여한 모는 사람이 그 단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공동체의 장래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결코 자기의 생각을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튿날 다시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 분들이 무서워 졌습니다. 「독선적이고 참 끈질긴 사람들이다!」 이 인상은 솔직히 아직도 내 심중에 남아있으며 지금도 그분들 중에 누구를 만나면 어쩐지 거리를 두려는 마음이 생기고 접근하기에 두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선출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지는 이유 중에는 그 관리직에 대한 인식과 거기에 따른 기대가 잘못 되어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또 밖으로 들어내 놓고 말하지 않는 어떤 내용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즉 말로는 봉사직이라 말하면서도 은근히 「명예」쪽에 마음이 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때마다 경험하는 일은, 입후보자가 선거기간중에 『나는 여러분들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종노릇을 하겠습니다!』라고 외쳤지만 당선된 다음에 아무도 그렇게 하지도 않았으며 이제는 그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크고 작은 책임자들이 많습니다. 또 작은 책임이라도 맡아 열심히 일해본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러는걸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말뿐이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알아주기는 고사하고 뒷말이나 않했으면 좋겠는데… 참 못해먹겠다』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허울좋은 우리의 왕이 모욕과 조롱속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왕에 대해서 지닌 명예와 영광은 간 곳도 없고 다만 비웃음만이 왕의 것으로 남았습니다.
교회의 모든 책임자들은 그 임무 수행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자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왕에 대해 가진 인식대로『네가 왕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리고 너도 살고 우리도 살려보라』(루가23, 37)고 외치며 비웃었지만 그리스도 왕은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책임자들이 진정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책임을 맡았다가 임기를 마친 어떤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 사람을 나무위에 올려놓고 흔드는 것은 사회사람들보다 훨씬 더 합니다… 한마디로 못 해먹겠더라고요!』 이 말속에 포함된 모든 뜻을 누가 다 알아주겠습니까? 공연히 그 일을 맡아서, 넉넉치 못한 주머니 돈도 꽤 많이 나갔습니다. 육체적으로 피곤함을 무릅쓰고 힘도 많이 들었습니다. 바쁜 일상 생활에서 누구보다 시간도 많이 냈습니다. 잘 해보려고 머리를 짜고 신경도 많이 쓰고 여러 사람들과 상의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실수도 했으며 말도 많았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전보다 관계가 나빠진 형제도 생겼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무슨 행사든 할 때마다 조마조마 했습니다. 행사도 성공적으로 치루고 싶었고 모두에게 좋은 말도 듣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결국 몇 사람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는 말 한마디로 임기를 마쳤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되었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일을 내놓고 나니 어깨는 가볍고 마음은 후련합니다. 약간 허전하기도 하고요』
물론 임기동안 별로 기대하지 않던 분으로부터 고마운 도움도 많이 받았을 것이며, 새로 알게되고 친하게 된 좋은 분들도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려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도직에 대한 인식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일생을 헌신적으로 사신 다음 군중의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선들 앞에서 홀랑 벗겨진 수치스런 알몸으로 머리에는 고통스런 가시관을 쓴 채 조롱당하며 죽어간 왕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통쾌해 했겠습니까? 우리는 부활의 벅찬 희망을 안고서 바로 그 왕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그분을 우리의 왕이라 부름에 아무도 조롱하거나 거부하지 못합니다. 나아가『모두 우리도 왕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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