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이 성자처럼 살았다면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학자의 일생이 고귀하기보다는 오욕과 굴절된 영혼을 갖고 살다가 마침내 신께 회귀했다는 점에 매료되어 다산을 내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섬세한 고찰과 재구성으로 대하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원로 소설가 한무숙(글라라ㆍ74세)씨의 장편소설 「만남」이 미국 캘리포니아 캠퍼스 출판부에서 영역 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84년 한국천주교 2백주년때 교황께 봉헌하고자 이 책을 썼다는 한무숙씨는 『구겨지고 때묻은 영혼을 가진 다산과 깨끗한 영혼을 가진 하상과의 대조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황과 용감한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을 쓰고 싶었다』 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84년 5월부터 85년 12월까지 계간 「한국문학」에 연재할 당시부터 가톨릭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더 호응을 얻은 이 작품을 평하는 한씨는『가톨릭 신자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통해 신자들이 신앙 선조들의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재미 프리랜서 작가 김옥영씨의 번역으로 미국판이 나오게 된 「만남」(영어명「Encounter」)은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파란만장한 생애, 특히 천주교에 입교하고 배교했다가 결국은 신앙고백을 하고 순교하는 과정을 통해 신과 인간 그리고 초월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서 발간하는 「라이브러리저널」은 「만남」에 대해 『불교와 천주교 그리고 도교의 문제를 한국적 지성과 서구 종교의 팽팽한 갈등을 축으로 철학적이고 사변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평했다.
86년 대한민국문학상 본상을 수상, 88년 12월에는 MBC창사 특집으로 방영돼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지금까지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하와이대학에서 미당선생의 「동천」, 「한국단편집」을 각각 영역 출판한 이래 영역된 소설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출판돼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한무숙씨는 『입교전 병상에서 일본인 우리가와 와사브로오 주교가 쓴 「조선 순교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고 『입교후에도 이 감동을 떨칠수가 없었고 오랫동안 마땅한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손을 못대고 있다가 우연히 다산에 관해 최석우 신부님으로부터 듣고 급작스럽게 이 작품을 쓰게 됐다』 고 강조했다.
42년 「신시대」의 장편소설 모집에 「등불을 드는 여인」이 당선돼 등단한 한무숙씨는 「역사는 흐른다」「생인손」「우리사이 모든 것이」 등을 발표하면서 여류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59년에는 한국일보에 「빛의 階段」을 연재하기도 했다.
한편「만남」에 이어 일본에서 절개를 지키다 순교한 오다줄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본향」 또는 「망향」이란 제목으로 저술할 계획인 한무숙씨는 현재 을유문화사에서 「한무숙 문화전집」(10권)을 출판중인데 지금까지 제6권 「感情이 있는 深淵」을 출판한 상태이며 오는 12월까지 전권을 완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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