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아인들에게 메시아가 민족적인 중요성을 띠었다면 복음서에서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식시키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공관복음서에 서는 예수의 탄생부터 예수가 하느님이 보내신 구세주라는 것을 여러가지 명칭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공적인 명칭인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갖추어져 있다.
예수는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 불렀고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를 설파하였다. 요한 복음서에는 히브리어「메시아」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하였고(요한1,41 : 4,25). 그리스어 「그리스도」라는 말은 17번이나 사용했으며 복합칭호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은 두 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자신이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승인한 것은 베드로의 고백과 재판정에서 가야파의 심문때 두번 뿐이다. 그 밖의 경우는 모두 완곡된 말투로 표현하거나 메시아라는 말을 퍼뜨리지 못하게 엄격히 금지하였다.
유대아인들은 세례자 요한이 나타났을 때도 그가 메시아인지를 알아보게 하였고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닐지 구구한 생각들을 군중이 하고 있을 때(요한7,40~44) 유대아 지도자들은 그 의견을 굳이 묵살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려는 수근거림은 점점 더 펴졌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자는 유대아 공동체에서 축출당하는 위법행위이다 (요한9,22 : 16,2).
유대아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 자신의 입에서 자기가 메시아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들은 장막절 때에도 예수께 신분을 밝히라고 윽박질렀다(요한8,53). 그러나 지금은 예수의 입에서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은 전도 여행 시초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알려 주셨다.
『지금 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이다』(요한4,26). 그 여자는 이방인이었고 그들에게는 메시아가 오면 이방인들을 가르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조금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예수께서 배내 소경을 고쳐 주신 후 그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9,37).
그러나 유대아인 적대자들에게는 당신이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밝힌 일이 없고 앞으로 때가 올 때까지는 밝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입에서 이 말을 직접 듣고 확증을 잡아서 로마 당국에 고발하려고 하는 심보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메시아이심을 굳이 부정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고 완곡한 표현으로 시인하신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고』(요한 10, 30). 『나에게 영광을 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이시며 그분은 너희가 자기 하느님이라고 하며, 사실은 그분을 너희는 모르고 있고 나는 그분을 알고 있다.(요한8, 54). 그러므로 『나의 판단은 나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고 나와 나를 보내신 분이 함께 판단한다.(요한 8, 16) 이런 말을 들었을 때에 유대아인들은 예수가 자기가 메시아라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감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고발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집어 치려고 하는 분풀이를 하고 맡았다.
오늘 성전봉헌절에 솔로몬의 행각에서 적대자들인 유대아인들과의 토론에서도 예수께서는 그들 힐책하신다. 『내가 이미 알아들을 만큼 말했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들을 행했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여기서「일들」이란 말은 요한이 기적적 일들이라는 뜻으로 썼고 때로는 「표징」이라는 용어로 쓴다. 그것은 기적이 기적자체에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아버지와 하나이며 아버지가 보낸 메시아이심을 믿을 수 있는 표라는 뜻으로 썼다.
그러니 양들이 자기 목자의 목소리와 몸짓을 알아듣듯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예수의 정체가 보이는 것이다. 유대아인들이 그 표징을 표로 보지 못하는 것은 당초부터 그들 적대관계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또는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요한10, 8, 11)라고 할 때에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이 메시아로서 오셨음을 알렸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은 그의 백성의 목자로 묘사되어 있고(시편 23, 1: 80, 2: 이사40, 11: 예레 31, 9: 참조 : 시편74, 1:79. 13: 95, 7:100, 3) 다윗적인 메시아는 구약성서 여러 곳에서 목자로 불린다(시편70, 70
∼72:예레37, 24:미가5, 3). 그러니 들을 귀있는 자는 알아들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목자를 따르는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도둑이며 강도이며 품팔이꾼일 뿐(요한10, 2:예레 2, 8: 10, 20:12, 10) 참된 목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졸개인 유대아인들은 참된 목자인 예수의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예수께서 보여 주신 표징들을 보고 또 보아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참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양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라고 하신 약속을 받았고 따라서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이니 그 누구의 손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의 하느님 말씀을 일깨워 주는 말씀으로 『내가 곧 하느님이다… 내 손에 잡힌 것은 아무도 빼내지 못한다.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뒤집을 수 없다』 (43, 13)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신다는 뜻으로『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단언하셨다. 이 말을 들은 유대아인들은 화가 나서 돌을 집어 들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