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한 신부님이 그보다 큰 사랑이 없는 영웅적인 사랑으로 익사 위험에 처한 신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이 익사하기 얼마 전에 저술한「그 나라가 임하시며」는 한 마디로 저자가 신앙인으로서, 사제로서 살아온 삶의 자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감동적인 책이다.

배 신부님에게서 새로 지은 책「그 나라가 임하시며」를 보내주겠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 신부님이 작고하기 나흘 전쯤이었고 부음을 듣는 순간에는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제 신부님의 마지막 저서가 되고 만「그 나라가 임하시며」는 한 장 한 장마다 신부님의 그 잔잔한 음성과 인자한 모습이 배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신부님은 스물네 해 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면서 자신의 좌우명을 바로「그 나라가 임하시며」로 삼았으니 복음의 요약인 주의 기도의 해설서로 펴낸 이 책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복음에 따라 충실하게 살며 사랑의 나라 건설에 투신한 신부님의 살아있는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주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대한 우리의 일곱 가지 청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의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께 대한 것으로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나머지 네 가지 청원에서는 우리의 미천함과 보잘 것 없음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다.

신부님은 이 책에서 이러한 일곱 가지 청원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사제로서의 자신의 풍부한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평이하고 유려한 필체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신부님의 해설이 설득력 있게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다만 그것이 풍부한 생활체험에 바탕을 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연한 논리를 바탕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실로 이책의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사제가 되기 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한 사회과학자로서, 사제가 되면서 철학과 신학을 연구한 신학박사로서, 본당 신부와 신학교 교수, 학장을 역임한 사목자로서 그동안 신부님이 섭렵하여 터득한 동서양의 사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성경은 물론 사회 회칙과 공의회 문헌과 조화를 이루며 사회과학적 논리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본당 신부 시절「주는 것이 받는 것」이라는 교육을 시키면서 겪은 체험담(15∼16쪽), 꿈 속에서 합격하여 잔치를 벌이고선 실제로는 떨어지는 입시생과 꿈 속에서 떨어져 통곡하다 실제로는 합격하는 입시생의 비유는 물론 우리 인생은「바랍바냐 예수냐」하는 취사 선택의 연속이라고 설파하는 것(81쪽) 등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을 이루 다 소개하기란 지면 제약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 나라가 임하시며」에서 제시되고 있는 가르침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은 오로지 우리의 행동뿐임(33쪽)을 몸소 실천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빛낸「사랑의 혁명가」의 가르침이기에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사랑하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라고 기뻐한 영원한 낙관주의자인 배 신부님의 가르침이기에 매우 귀중한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배 신부님께서 남겨준 말과 행동으로 가르침과「그 나라가 임하시며」를 비롯한 여러 저술에 대해 하느님과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배 신부님께서 부디 하느님과 만남의 기쁨을 만끽하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