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적대자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예수의 비유의 말씀이 자기네들을 두고 한 말이며 그 말씀으로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가지고 법적으로 책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또 사람들이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예언자를 잡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었고 예수에 관한한 같은 패가 아닌 헤로데 당원들과 합세하고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교묘한 질문을 하는 데 명수였고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말 마디를 가지고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데는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헤로데 당원들은 헤로데 대왕이(전 37∼4) 막대한 뇌물과 아첨으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뚜스로부터 유대아의 분봉왕으로 책봉되면서 유대아 국내에서 헤로데 일가세력을 구축하고 그 지위 확립을 위해 로마제국에 충성하는 세력으로 자랐다.
헤로데 대왕은 예수 탄생시에 무고한 어린이들을 학살한 자였고(마태 2, 16) 예수의 복음 전파 공생활에 등장하는 헤로데는 대왕의 아들로 갈릴레아와 페레아의 분봉왕이 되어 세례자 요한을 목 잘라 죽인 헤로데 안티파스이다. 오늘 등장하는 헤로데 당원들은 안티파스의 도당들이고 이들은 유대아인들의 메시아 기대를 망상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기원 전 6년, 안티파스의 형 헤로데아르켈라우스가 황제의 명으로 분봉왕 직에서 퇴위되고 죽자 로마는 그의 영토 유대아를 로마의 직할영토로 병합하면서 세금문제가 생겼다. 이때 갈릴레아인 유다스라는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봉기하여 이방인에게 납세하기를 거부하였다. 물론 그는 그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만 했다. 그 후부터 로마인들에게 바치는 납세문제는 유대아인들에게는 종교문제로 등장하였다.
납세문제에 대하여 헤로데 당원들은 추종파였고 열렬한 반대파는 국수주의 열성당원들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이 이국인에게 굴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바리사이파들도 속으로는 열성당원들과 같은 의견이었지만 납세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거부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저 현실에 안주하면서 세금을 바치고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를 체포할 구실을 이 문제에서 찾으려고 교활한 꾀를 썼다. 그들은 로마의 주구들인 헤로데당 사람들과 결탁하고 예수께 와서 납세문제를 들먹이었다. 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유대아인의 납세 거부 주장을 예수에게서 들으려고 했다.
납세 거부는 반 로마제국을 뜻하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헤로데 당원들을 시켜 예수에게 반 로마 반란자라는 죄목을 씌울 수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간교는 예수를 그 길로 몰아넣는 논법으로 예수를 양심대로 말하는 사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아무 권력도 무서워하지 않는 분, 사람들의 체면과 관계없이 진리를 말하는 선생님이라고 위장 칭찬한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진다.『로마 황제에게 인두세를 바치는 것이 율법에 어긋납니까? 어긋나지 않습니까?』
이것은 교활한 질문이었다. 하느님과 황제 둘 중 택일하라는 것이었는데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걸려들게 되어 있었다. 황제를 추종하는 것은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 시대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께 기대했던 대답은 납세 거부의 발언이었다. 그들의 마음씨는 위선이었다. 위선은 거짓과 통하는 것으로 과연 그들은 예수를 처단하는 재판에서 예수께서 황제께 납세를 거부하라는 선동을 하였다고 허위 증언을 하였다.
예수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하느님과 국가 권력과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고 권력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께 해야 할 일이 있고 국가 권력자에게 할 일이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인 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세금 바치는 돈을 보여 달라』. 그 돈은 표면에「신성한 아우구스뚜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뚜스」라고 인각되어 있고 이면에는 황제의 모후가 신들의 옥좌에 앉아있는 초상이 인각되어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에 올림픽 왕장을 잡고 왼손에는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었다. 이 돈은 일 데나리오 은전으로 불리었다.
이 신격화된 황제의 돈을 사용하는 것 그 자체가 황제의 통치하에 있다는 표이고 그 통치하에 있는 사람은 세금을 바쳐야 한다. 예수의 적대자들이 그 데나리오 은전을 예수께 보이자『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쳐라』라고 똑똑히 일러주었다.
하느님의 것은「하느님 나라의 의로움」뿐이다. 기대를 저버린 예수의 대답을 듣고 그들은 말문이 막혔고 속으로는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새기고 박해하는 로마제국에 대처하며 초대교회를 이끌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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