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정책과 선교
유럽의 원정대들이 원주민의 땅을 정복하고 선교활동을 주도한 시초에는 모두가 평신도들이었다. 이들은 본국에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아랍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무분별하게 실시되었던 이단 심문의(본지 66호 참조) 분위기에 익숙해 있었던 평신도들로서 절제되지 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복자들은 위와 같은 신앙심으로 원주민들의 신상을 쓰러뜨리고 예배 장소를 파괴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즉 그들은 유럽 밖에서도 이슬람이나 이단자들을 정복하는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선교활동은 소위 선교「보호권」이라는 빠드로나도(Pa-dronado)의 협약에 의한 선교 수도자들의 파견과 함께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 선교보호권과 관련된 협약에서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은 1498년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그들이 점령한 지역에 대한 경계선을 그어주며 동시에 그 지역 주민들을 그리스도교 복음화하는 의무를 부과하였는데, 이 두 나라의 왕들은 새로운 선교지역에서 주교 임명 등 교회관계 인사 임명권까지 가지게 되었다.
소속왕이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이에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을 감당하며 신변 보호까지 책임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이에 못지 않은 폐단도 더 많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주교로부터 성당의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왕에 의해 임명되어 파견됨으로써 왕의 관리처럼 전락하였다. 교황은 이들의 선교지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없었다.
그 후의 일이지만 그들의 국력이 쇠퇴하여 그들의 의무를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권리를 그대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선교보호권에 의하여 정복자들이 가는 곳에 항상 선교사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금, 은, 진주 등 점령지에서 식민주의자들의 광신적인 착취행위를 은폐하는 데 선교활동이 자주 이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대량 학살도 자행되었다.
희생자들의 숫자가 학자들에 따라 과장되어 알려지기도 하였는데 직접적인 폭력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고, 희생자들의 숫자에는 원주민들에게 전혀 면역성이 없는 병이 유럽인 정복자들에 의해 전염되어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또 강제노역에서 탈진하여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교황은 어떠한 경우에도 점령지에서 영신적인 목표를 망각하지 않도록 강조했지만 정복자들의 탐욕을 억제하는 데 영향력을 별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순수한 선교 사명을 망각했거나 선교를 극단적으로 그리스도교 우월주의에서 해석하여 개종을 강요한 일부 선교사들도 복음정신과는 동떨어진 선교활동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원주민 이교인들을 본국의 이단자들이나 배교자들과 동일시하면서 이미 교회에서 단죄된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원주민들을 다루기도 하였다.
물론 정치와 종교가 일체화된 유럽의 상황에서 이단자들에 대한 영적이고 세속적인 벌을 부과할 수 있는 교회법이 있었지만 유럽 밖의 다른 대륙의 이교도의 복음화에 관한한, 진정한 개종은 본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동의로써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자신의 자유로운 동의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회심과 강압적인 방법은 양립할 수 없다.
도미니꼬 수도회의 바르똘로메오 데라쓰 까사스(Bar-tolomeo de Las Casas)라는「모든 인간에게 신앙을 선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1522∼37)이라는 글에서 애덕생활의 모범과 함께 원주민들을 설득시키는 온화한 사도적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재강조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실현시키는 차원에서 다른 대륙을 정복하는 동기를 부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점령지에서 정복자들의 비인간적인 탐욕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원주민들이 이교도로 계속 남아있었을 때에는 유럽의 정복자들과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들의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노예화하기가 더 쉬웠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비도덕적이거나 부당한 명령에 신앙의 이름으로 저항할 줄 아는 권리의 주체가 되었다.
이러한 저항들이 곳곳에서 일어나자 식민주의 관리들은 원주민들의 복음화와 개종을 좋게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원주민들이 그들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을 키워가면서 더 이상 정복자들의 횡포를 방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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