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3월 11일
앵커리지 수강생의 한 사람인 박비오씨가 전화를 걸어와 곤한 잠을 깨웠다. 별거 중인 아내와 재결합하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알래스카에서부터 면담을 통해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위로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내일 부인을 데리고 내게 온다고 하니 부부문제에 또 한 번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내에게 앵커리지에서 오는 길에 연어를 사가지고 토론토에 들리겠다고 연락했으나 지키지 못해 죄스러워 전화를 했다. 오랫만에 밝은 목소리로 응해주어 무척 기뻤다.
『수고하셨어요. 당신이 기뻐하고 보람되어 하니 나도 그저 기쁠 뿐이에요. 이 땅에 살면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당신이 행하는 주님사업이 성공적으로 되기를 기도드리고 있어요. 나는 외로워도 참고 서러워도 참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간 얼어있던 가슴이 한 순간에 모두 녹아내리며 뜨거운 사랑으로 온 몸에 열기가 가득함을 느꼈다. 부활절에 한 번 다니러 간다고 약속했다.
아내로부터 여러 가지 그곳 소식을 전해 들었다. 특히 국선도 수련이 이제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두 차례의 불덩이 같은 열을 이겨냈다고 자랑했다. 또 인꼴라 마리애에 관한 신문기사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등 장시간 통화하다 보니 당장 아내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저녁에 서양인 아틀랜틱시티 꾸리아 단장과 서기가 면담을 요청해와『먼저번에 건네준 나의 활동 내역서를 시애틀에 있는 꼬미시움에 보내어 알래스카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6∼8월 3개월간 인꼴라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승인이 나왔다』고 전했다.
■92년 3월 12일
오후에 최 신부님이 오셔서 앵커리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박비오씨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부인의 세례명은 안젤라였고 34세의 동갑내기들이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남편으로부터의 배신감 때문에 겪은 정신적인 갈등과 고뇌가 얼굴 밖으로 역력히 드러났다.
성당으로 부인만 데리고 갔다. 성체조배하며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흐느끼는 부인은 장장 3시간 동안 그간의 삶을 다 이야기했다. 대략의 방향을 제시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올 때는 아주 밝은 표정이 되었고 웃는 얼굴로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무엇보다도 골치 아픈 일을 이곳까지 몰고 와서 신경 쓰이게 한다 싶어 최 신부님께 무척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조금도 그런 내색을 안하시고 오히려 더욱 진지하고 세심한 배려까지 하시면서 돌보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두 자매님이 이분들을 위해서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있어 또한 감사를 드렸다. 주님 안에 한 형제자매들이기에 멀리 알래스카에서 온 이분들을 이토록 한 식구처럼 대해주시니 고맙기만 했다.
새벽 4시경 박비오씨 부부가 돌아갔다. 새벽길을 달리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부디 재결합하여 행복한 삶이 영위되기를 주님께 기도드렸다.
■92년 3월 13일
오늘부터 예비자 교리를 맡기로 되어 있어 경험은 없지만 최 신부님의「나의 공부」에 대한 배려임을 감사하며 첫 시간을 맡았다. 첫 시간에 하기로 되어 있는 지침대로 열심히 했다.
■92년 3월 16일
저녁미사 후 십자가의 길과 저녁기도를 마치니 10시다. 몇몇 사람들의 입놀림 때문에 공동체 내의 소요가 결국 김마리아 단장과 최미카엘 부단장에게 결정적인 상심을 주어 주회까지 결석하게 만들었다. 결국 주회는 개최되지 못했다. 이로 인한 최 신부님과 윤 회장의 대화 중에 나는 너무 피곤하여 소파에 기대어 30분 가량 잤다.
새벽 1시 30분경 체리힐로 가자는 신부님의 제의에 따라 아파트에 차를 세워두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섰다. 체리힐에 도착하니 새벽 2시 40분, 마침 밥과 된장국이 있어 한 그릇씩 맛있게 먹으며「체리힐 해장국집」이라는 간판을 걸면 어떻겠느냐고 신부님과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92년 3월 18일
앵커리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안 이상인씨로부터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다고 요셉이 전해줘 전화했다. 만나자기에 쾌히 응낙하고 1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분은 아틀랜틱시티 장로교회의 유력한 집사이며 그 교회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 중 50%를 담당하는 열심한 신자라고 소개 받았기에 더욱 관심을 두고 그간 여러 차례 접촉했었다. 지난 2월 19일 이인복 교수 강의 때도 초청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기에 오늘은 좀더 깊은 대화를 해보려 했다.
앵커리지에서 가져온 연어를 선교용으로 반 마리만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은 것을 건네준다는 명분으로 아파트로 모시고 왔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니, 그분은 신앙적으로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참종교」「참신앙」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천주교는 사제 한 분 탄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가를 이야기하고 교계제도 등을 설명해 주었다.
또 토론토 남 단장의 개종 경위도 이야기했다. 몬트리올 이민 초기에 연합교회 창립 주역이었고 20년 간이나 장로로 활동하셨던 분이 지금은 토론토 한인 천주교회 레지오 단장이며, 그분의 아들은 4대 독자로서 치과 의사였는데 안전하고 행복이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38세의 나이에 로마에 가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서품 받아 토론토에서 아주 존경 받는 사제로 사목 중이라고 말해주면서 이제 천주교에 대해 공부 좀 하라고 권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책을 전해주어야겠기에 최 신부님께 상의 드리니「교부들의 신앙」을 추천해 주셨다.
■문태준 단장 연락처
Paul T.Moon 7250 yonge st. #606 Thomhill Ontario L4J7X1 CANADA
TEL(905)881-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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