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잠언 9, 1∼6)에서는 지혜가 새 집을 짓고 잔칫상을 걸게 차려서는 어리석은 자들을 초대합니다. 여기서 지혜는 하느님을 인격화시킨 상징이며 일곱 기둥을 세운 집은 하느님의 성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훌륭한 자리에 속없는 사람들을 초대해서는 거저 먹고 마시도록 사랑을 베풉니다.
『와서 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 내가 빚은 술을 마셔라』
이 말씀은 보통 고마운 말씀이 아닙니다. 지혜는 사실 그 잔치에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닙니다. 소를 잡고 포도주를 빚었습니다. 최고의 음식을 장만합니다. 그리고는 공짜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초대의 깊은 의미입니다.
『복되게 살려거든 철없는 짓을 버리고 슬기로운 길에 나서라』
좋은 음식을 무료로 하느님 전에서 먹되 다만 그 음식을 먹고는 행실을 바르게 고쳐 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 훌륭한 음식을 먹고도 삶이 개선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하느님과 그 음식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과연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철없고 속없는 어리석은 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미련한 자들입니다.
세상 똑똑한 척 하지만 참 지혜를 모르는 사람, 없어질 것에는 죽자사자 붙잡고 매달리면서도 영원한 것은 쉽게 내버리는 사람, 참평화를 외면하고 오로지 거짓평화에만 푹 빠져있는 사람, 객관적인 진리를 외면하고 자기 편견만 고집하는 사람, 남이야 어찌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 진실이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들 삶 속에서 닫혀진 사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지혜는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거저 초대 받고 있습니다. 자격도 없는 인생들이 하느님 대전의 훌륭한 잔치에 초대 받았습니다. 음식은 바로 하느님 자신입니다. 하느님 집에서 하느님을 먹습니다. 완전히 무료입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복음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미사는 바로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천상의 잔치에 비유됩니다. 초대하는 주인은 예수님이요 음식은 예수님의 살과 핍니다. 그보다 더 맛있는 음식도 없으며 그보다 더 귀한 음식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무료로 하느님 대전에서 먹습니다. 참으로 행운아들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뭐 잘났다고 그분의 초대를 받아 그분의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잘난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못난 것뿐이요 더 있다면 죄악들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 자신을 음식으로 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실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보답하는 길이요 감사하는 길입니다.
언젠가 미사 중에 성체를 나눠주는데 한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따라 나왔다가는 자기도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웃으면서 안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드니까 굉장히 서운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나자 그 꼬마가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가져오더니만 성체를 달라는 것입니다. 팔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귀엽게 보였습니다.
그때 꼬마에게 그랬습니다. 그 떡은 예수님인데 예수님을 모시려면 기도도 해야 하고 또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자 꼬마가 말하기를 자기는 주의 기도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엄마 말도 잘 듣는다고 했습니다. 좌우간 그날 그 꼬마를 달래느라고 진땀을 뺐는데 그 과정에서 내 자신에게 반성되는 바가 컸습니다.
나는 사제로서 과연 저 어린이 만큼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저 꼬마처럼 내가 성체를 모시기 위해 애타게 갈구하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냥 의무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별 감사의 뜻없이 성체를 모신 것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죄도 그런 죄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먹으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르니 그보다 더 어리석은 것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요 비천한 존재들이며 어리석은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가공스러운 일은 그 귀한 성체를 기다림없이, 고마움없이, 그리고 행실의 개선이 없이 그냥 먹고 모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체에 대한 깊은 의미를 새롭게 은혜와 축복으로써 간직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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