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하느님의 구세사적 섭리 속에 집어넣어 비추어 생각하면 포도밭 주인은 물론 하느님이다. 그리고 그 포도밭은 구약성서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예루살렘이라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은 그 이름 자체가 뜻하듯「평화의 도시」이다. 하느님이 성왕 다윗을 세워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하느님을 공경하도록 이끄실 때 다윗으로 하여금 이 도시를「거룩한 도시」로 정하고 이곳에 하느님이 안주하시는 곳으로 정한 도시이다.
그 후부터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이 계시는 이 시온산 즉 예루살렘을 향하여 찬미가를 부르며 순례하는 도시가 되었다(시편 78, 68 이하:132, 13~18). 이렇게 포도밭을 마련한 주인은 여기에 담장, 망대, 포도 짜는 확 등 필요한 장치를 끝낸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지성소를 만들고 성약의 궤를 모시고 도시를 보호하는 성곽을 쌓은 것과(사무 하 5, 6 이하) 솔로몬이 이곳에 성전을 세운 것을 뜻한다(열왕 상 6~8장).
주인은 이 포도원을 여러 소작인들에게 맡기었는데 소작인이 여러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은 여러 시대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통치한 유대아인들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주인은 포도원을 맡기고 먼 여행을 떠나는데 이것은 구세사의 장구한 세월의 흐름을 뜻한다. 그러니 비유 말씀에서 주인이 왜 먼 여행을 떠났는가 라는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먼 길을 떠났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성약을 맺고 성과를 얻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추수 때가 되어 여러 번 종을 보내어 도군을 받아오게 한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여러 번 주님의 종인 예언자들을 보낸 사실로 알아들으면 이야기는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서는 종들을 두 번 보냈고 마르코와 루가는 한 사람씩 세 번 보냈다. 마태오에서는 첫 번째 파견과 두 번째 파견의 여러 명의 종들이 어떤 사람은 학대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살해되었다.
어떻든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들을 이스라엘인들이 살해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지적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살해했다는 것은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내리는 일곱 번째 저주에서 노골적으로 말씀하신다:『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떠들어댄다』(마패 23, 29~30).
그 조상들이 살해한 예언자들을 마태오 복음서는 전시대 예언자들(모세와 엘리세오 사이의 시대)과 후시대 예언자들(이사야부터 말라키야까지)로 두 그룹으로 나누었고 마르코와 루가가 한 사람씩 세 번 파견한 것은 시대 따라 무수한 예언자를 파견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인이 한 번, 두 번, 세 번 차례로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사지에 보내는 어리석은 행위는 자동적으로 의구심이 사라진다.
하느님은 몇 번이고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려고 인내심을 갖고 예언자들을 보내신다. 구원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또 사지에 보내신다. 이것은 인간 사회의 사고방식과 하느님의 섭리적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며 하느님의 사고방식을 거역하는 세력에 대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사랑을 베푸시는 천상적 이치이다.
악당들은 그 아들마저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고 만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을 역력히 드러낸다. 주인은 아들마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힌다. 결국 악당들은 처벌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예수 이후에 사도들에게 맡겨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방인들에게 그 일이 맡겨질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셨다. 온 세계에 퍼진 교회를 가리킨다.
이 사람들은 유대아인들이 경멸하던 이방인들이며 이 사람들을 두고 예언적으로 말한 시편 118장을 예수께서는 인용하셨다.「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22~23절). 악당들의 운영은 돌에 깔리고 머리 위에 돌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멸망의 벌을 받을 것인데 이 표현은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전멸하는 역사적 사실을 예언한 말씀이다.
대제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의 말씀이 노골적으로 자기네들을 두고 한 말인 줄을 알아챘지만 군중들 때문에 예수를 체포하지 못하고 또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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