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애 깨어서 듣는 빗소리는/창 밖에 나직이 하직 고하는/먼 세상 끝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발소리 같다(중략) 눈 멀고 귀 먹었던 청춘의 어두운 뒷모습들/실밥 터진 옷 사이 붉은 헌디들이/희미한 자막으로 해종일 지나가는(중략)「빗소리에 깨어서 중」』
한국 문단계에 여류 원로시인 홍윤숙(데레사)씨가 최근 고희를 맞아 기념시집 낙법놀이를 펴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는 저자가 생애의 떠남을 준비하면서 살아온 삶을 반추해보는 시들로 엮어진 이 시집은 △마지막 공부△징후△낙법△낙과기△꽃과 폭력 등 5부로 나눠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낙법놀이에서의 낙법은 유도운동에서 얘기하는 낙법이 아니라 정상에까지 도달했다가 밑으로 내려오는 과정 즉 세상을 깨끗하게 떠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놀이」라는 것은 어려움과 갈등 고민 속에 살았던 생애,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시집에는 65편의 시가「놀이」라는 부제가 붙어 연작시 형태로 수록돼 있다.
70성상에서 생의 벌판을 뒤돌아보니 산도 골짜기도 다리 끊어진 강도 보이고 그것들을 넘고 건너느라고 허덕이며 살았던 것들이 한 순간 지나간 놀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연작시가 구상돼진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다리 한쪽은 낭떠러지에 또 다른 한쪽은 허공에 거는 것 같은 그런 처절한 힘든 마음에서 낙법이라는 단어를 생각케 됐고 이 시들은 모과가 땅에 떨어지면서 향기로운 향기를 풍기듯 그렇게 아름다운 착지를 희망하며 쓴 것들』이라고 홍씨는 시집의 제목에 대해 설명한다. 생을 돌아보고 살아온 과정과 지점을 돌이켜보면서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깨끗하게 떠나는가 하는 게 크게 다가섰다고.
「경의선 보통열차」를 펴낸 후 89년경부터 계속해서「놀이」와 관련된 시들을 써왔다는 그는 이제는 놀이에 불과한 듯 여겨지는 사건들에 그때는 왜 그리 집착하고 몸부림쳤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한편 그것들을 넘고 돌아 건너오느라고 흘린 땀방울들도 그립다고 말했다. 홍씨는 놀이의 연작시와 함께「십자가」(가제) 연작시도 계속해서 쓰고 있는 중이다. 십자가 아래서의 묵상기도가 시로 엮어진 것으로 일종의 신앙시집이 될 예정인데 이 시집은 내년쯤에나 출간될 계획이다.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묵상집 같은 시집을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란다.
시와 신앙에 대해 질문하자『그 둘을 양분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시 쓰는 정신과정을 신앙의 자세라고 생각』한다면서 골똘히 기도하는 철저함 없이는 시를 쓸 수도 없다고 밝힌다. 그러나 어떤 때는 시를 쓸 땐 신앙과도 같은 힘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신앙으로 가는 저력이 되기도 한다고 토로, 시편이나 전도서 등을 읽노하면 시상을 잉태하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간 써온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하고 끝냈다는 안도감이 크다』고 시집 발간을 소감을 전한 그는『많은 독자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고 젊은 세대들도 한 번쯤 미래에 서서 그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1925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홍윤숙씨는 47년「문예신부」에「가을」을 48년 신천지 민성 예술평본 등에「낙엽의 노래」「산상에서」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장식론」등이 10권 수필집에는 하루「한 순간을」등 8권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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