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음해의 위협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요르단강을 건너 세례자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물러 가셨다. 예루살렘에서 장렬한 구세사적인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은 이미 알고 계셨지만 아직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르단강 건너 지방은 마카베오 왕조시대 (전165~137) 에 이교도들을 무찌르고 유대아인들이 정렴한 후 해로데 왕국이 되었다. 신약시대에는 페레아지방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헤로데 안티파스와 헤로데 아그리빠 1세와 2세가 대를 이어 73년까지 통치하던 곳이다. 마태오 복음서는『예수께서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강 건너편 유다지방으로 가셨다. (마태19. 1) 고 하였고 마르꼬 복음서는 『그곳을 떠나 유다 지방과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셨다』 (마르10. 1) 라고 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셨다고 한 요한복음서와 여정상의 차이가 있다.
여기서 복음사가들은 예수의 여정일기에 관심이 있 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결국은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예수의 주 활동무대였던 갈릴래아를 떠나 유대아지방과 예루살렘을 둘러 성전봉헌절예식에 참석했다가 요르단강 건너 지방으로 가신 것이 마지막 여행행로라면 「그곳을 떠나」 라고 한 마르꼬의 기사와 「갈릴래아를 떠나」 라고 한 마태오의 기사는 전도여정을 전체적으로 본 견해이고 요한은 갈릴래아를 떠나 유대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셨던 여정에서 갈릴래아를 떠난 사실은 벌써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생략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마태오 복음서에서 「요르단강 건너편 유다지방으로」라고 한 것은 복음서가 필사본으로 전해지면서 「요르단강 건너편과 유다지방」으로 원문에 되어 있는 것에서 「과」가 빠졌다고 생각하는 학설이 있다. 왜냐하면 요르단강 건너편은 유대아지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정을 요르단강 건너편과 유대아지방을 거쳐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으로 잡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이 마지막 여정은 두 가지 뜻을 던져 준다. 하나는 예수께서는 아무데서나 아무때나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 손에 죽지 않고 정해진 때에 정해진 곳에서 자발적으로 구세사적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수들의 음해소동을 피하여 안 전한 곳으로 피했다. 둘째는 세례자 요한한테서 세례를 받던 장소로 돌아옴으로써 요한의 증언과『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늘의 목소리 증언을 회상케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래아를 떠나 유대아지방에서 전도하신 것은 9월에서 12월이고 요르단강 건너편에서는 12월말에서 3월말정도까지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공적 활동을 시작한 곳에 이제 공적 전도활동을 끝내려고 하고 있다. 이곳은 또한 사도 요한이 주님을 첫번째로 만났고 다른 제자들이 볼링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요한 1, 35 이하).
예수께서 이곳에 꽤나 오래 머무셨는데 아마 1월 초였을 것이다. 페레아의 겨울은 따뜻하다. 마지막 비 극을 얼마 안남기고 쉬시는 장소로는 적합한 곳이었다. 아마도 세례자 요한 이 세례를 베풀던 베타니 아에 쉽터를 정했을 것이다. 요한은 여기서 세례를 주며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바로 이곳에서 예수를 가리켜 저문은 세상의 죄값을 한 어깨에 젊어지실 분으로 이 분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언한 곳이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께 대한 신앙을 얻게 된 곳이다.
요한이 죽은지 1년반 내지는 2년후 이 곳에 나타난 예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몰려 왔다. 그러고 『요한이 이 사람에 관해서 증언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라고 하며 그 들의 신앙을 굳혔다. 이 곳에서의 환영과 예수의 고향이며 조국땅인 유대아와 예루살렘에서의 배척을 비교하면서 복음사가 요한은 복음서 서두에 『그 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사람 들은 그 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요한 1, 11) 라고 썼던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 땅에서 배척을 받고 이방인들의 땅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시면서 전도여행의 마지막 국면을 맞이 하시는 것을 본 복음사가들은 예수와 함께 만감이 교차하는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요르단 강 건너 협곡에는 모압민족, 압몬족, 시리아인 그리스인, 사막에 사는 아랍인들이 유대아인들과 함께 섞이어 사는 페레아지방이다. 유대아인들의 교과서 탈뭇은 요르단강 건너편 사람들을 밭의 가라지로, 자기네들을 알곡식으로 갈릴래아 사람들을 지푸라기로 비유하고 있다. 이제 예수께서는 지푸라기들에게 전교를 하고 나서 가라지들에게 설교하고 그들에게 기적들을 보여 주신다.
이것으로 예수의 본격적인 전도여행은 끝나고 남은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뿐이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으로 시작하여 요한을 상기시키는 기사로 끝나는 예수의 공적활동기사에서 세례자 요한에 관 한 기사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요한 1, 19~36~ 3, 33~35→10. 41. 과연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증언하면서『그 분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 30) 라고 언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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