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산주의를 만난 선교사…’ 논문으로 북한학 박사학위 받은 강주석 신부
“6·25 당시 선교사들, 이념 넘어 인권 추구”
일기·편지에 담긴 선교사 ‘마음’ 분석
가톨릭사제로서 처음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주석 신부. 강 신부는 “선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 특히 6·25전쟁으로 사회와 사상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던 선교사들의 마음을 가톨릭 사제가 논문으로 작성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강주석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가 그 주인공. 강 신부는 북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첫 번째 가톨릭 사제다.
강 신부는 8월 22일 ‘공산주의를 만난 선교사들의 ‘마음’-한국전쟁 시기를 중심으로’ 제목의 논문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많은 학자들이 6·25전쟁 당시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런 이분법을 넘어 ‘마음’이라는 창으로 이 시기를 보고 싶었다. 그러면 심층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며 논문 저술 동기를 밝혔다.
강 신부는 논문에서 ‘마음’을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행동의 자원이며, 행동으로 실현되지 않지만 태도, 관점 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자원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6·25전쟁 당시 선교사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강 신부는 선교사들의 마음을 살펴보려고 메리놀외방선교회,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일기, 사적 편지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반공주의가 내재화된 미국 가톨릭 선교사들에게 6·25는 반공주의와 충돌하는 경험을 주었다”고 말했다. 강 신부는 특히 “이들은 형무소에서 인권이 무시되는 상황, 재판 없이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상황을 보고 분노했다”며 “분노는 선교사들이 갖고 있던 반공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선교사들이 이승만 정부에 항의, 미 대사관과 충돌하며 유엔에 보고하는 행동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강 신부는 6·25전쟁 당시 가톨릭교회가 반공주의를 택했던 이유로 토지 문제를 들었다. 교회가 토지로 재산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방공간에서 38선 이북의 토지개혁은 가톨릭교회에 실질적인 위협이 됐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은 가톨릭을 공산주의를 방해하는 미국의 첩자라고 생각했다. 이 당시 가톨릭과 공산주의는 사상을 넘어 서로의 존립에 위협이 되는 존재였던 셈이다.
강 신부는 논문이 6·25전쟁과 관련된 것인 만큼 인터뷰 동안 북한선교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어느 한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약하는 것”이라며 “북한 선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며 함께 구원받고 변화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신부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선교 사명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 선교”라며 선교 사명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조지혜 기자 sgk9547@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