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
세계 분쟁지역 청년들과 기도했다, 이 땅에 평화를
시리아, 동티모르, 크로아티아 등 분쟁국가 청년들도 함께 강원도 고성, 철원 등 330㎞ 순례
남과 북 갈라진 분단 상황 보며 평화의 의미 되새겨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마련한 ‘2017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에 참가한 청년들이 8월 18일 6·25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강원도 철원 옛 북한 노동당사를 둘러보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내리쬐는 뙤약볕도, 갑작스런 폭우도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가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6박7일간 마련한 ‘2017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이하 DMZ평화순례)’에 참가한 청년들은 시리아, 동티모르,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온 또래 청년들과 함께 걸으며 평화의 참뜻을 가슴에 담았다. “평화를 생각하고 나누고 걷고, 또 걷는다!”라는 주제 아래 8월 14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 발대식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청년들은 일주일 동안 강원도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 등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 일대 약 330㎞를 순례했다. ‘평화의 바람’을 몰고 올 청년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 철책선 바라보며 ‘분단’을 체험한 청년들
국내 49개 대학 청년 60여 명과 해외·분쟁국가 초청 성직자 및 청년 20여 명 등 90여 명은 통일전망대, 두타연, 을지전망대, 제4땅굴 등을 거치며 한반도 분단 상황을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특히, 강원도 철원 생창리 DMZ 생태공원 내 약 17㎞ 구간을 순례하면서 생생한 한반도 ‘분단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오지연(24·한신대 정보통신학과 4년)씨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북한과 가까운 곳을 직접 걸으며 분단에 대한 것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성민선(라파엘라·20·인천교구 김포 사우동본당)씨는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도보순례를 통해 분단과 분쟁, 그리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 전쟁의 아픔 속 피어난 생명들과 아름다운 정경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에도 청년들은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겨나갔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에도 청년들은 연신 즐거운 얼굴로, 흠뻑 젖는 것마저 즐기는 표정이었다. 철원평화전망대를 찾은 청년들은 드넓게 펼쳐진 DMZ 일대를 넋 놓고 바라봤다. DMZ 안에 설치된 초소들과 백마고지, 피의 능선 등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 남긴 상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분단 현실에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청년들은 자전거를 타고 평화전망대부터 노동당사까지 약 9㎞를 쉼 없이 달렸다.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깨끗한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뒤처지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함께 소통하는 기쁨도 만끽했다. 함현민(레오·22·서울 대치3동본당)씨도 “염수정 추기경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 서로 싸웠던 전쟁의 터전이 스스로 회복된 것을 보면 역설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런 자연경관을 많은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 도보순례 중 느끼는 전쟁의 모습, “평화는 비폭력이다”
DMZ평화순례의 특별한 점은 한국 청년들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청년들이 함께한다는 점. 특히, 해외 교회 장상의 추천 및 NGO 등을 통해 초청된 시리아, 동티모르, 캄보디아, 크로아티아, 팔레스타인 등 분쟁국가 청년들은, 한반도 분단 상황을 둘러보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놔 눈길을 끌었다. 해외 청년들은 철조망이 눈에 띄는 삼엄한 DMZ 일대를 돌아보며 ‘한반도’의 경직된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시리아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 매지디 알자훔(마리아·27)씨는 ‘평화부채’ 완성하기 체험에서 ‘평화는 비폭력이다’라는 문구를 선보였다.
‘비폭력’이라는 말을 한글로 쓸 수 있도록 한국 청년들이 옆에서 분주히 도왔다. 매지디씨는 평화부채를 완성하고 ‘비폭력’이라는 말을 소리 내 발음하기도 했다. 그는 “폭력이 있으면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평화를 얻으려고 전쟁을 치를 수 없다”며 “DMZ 일대를 도보로 순례하면서 같은 국가, 같은 땅, 같은 사람인데 나눠져 있다는 데 묘한 기분이 든다. 시리아에서도 분쟁이 있지만, 한국의 분단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청년들은 서툰 한국어지만 한국 청년들과 어울리면서 ‘분단’의 아픔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겼다.
■ 체험형 통일교육의 필요성 느껴
이번 DMZ평화순례에 참석한 이들은 특히 ‘체험형 통일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입을 모았다. 아직도 전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DMZ 일대를 걸으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체험’들 속에서 분단의 아픔이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고 말했다. 김현수(20·인하대 정치외교학과)씨는 “통일과 분단 현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통일의 필요성과 북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었다. 남북의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직접 와서 보고 느끼는 것이 값진 경험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대교구 크로아티아대성당에서 관광이민자와 난민부서에서 사목하는 안젤코 신부 역시 “평화를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하며 또 이러한 통일교육도 필요하다. 남과 북에 대한 고른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8월 18일 청년들이 머물고 있는 경기도 전곡 한반도통일미래센터를 찾은 염수정 추기경은 참가자들과 미사를 봉헌하며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 분쟁을 이겨내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DMZ는 그것을 배우는데 매우 적합한 장소다. 과거의 참혹한 상처가 지금은 자연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자연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회복하여 평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6박7일간의 여정을 마친 참가자들은 통일미래센터에서 해단식을 가졌다. 청년들은 ‘2017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를 통해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주면서 ‘소통’과 ‘평화’를 위한 값진 땀방울을 쏟았다. ‘평화’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의 바람’을 일으켜나가겠다는 다짐이 넘쳐났다.
DMZ평화순례는 2012년 시작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3회째를 맞은 행사는 전쟁과 긴장, 새로운 평화의 씨앗이 싹트는 DMZ 일대를 걸으며 평화를 만나고, 체험하며 평화의 바람을 퍼뜨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신자 및 비신자 청년 약 300명이 신청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DMZ평화순례가 청년들의 관심을 끄는 까닭은, 무엇보다 ‘평화’에 대해 직접 느낄 수 있고 다른 국가 청년들과 함께 지내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 역사에 관심이 큰 다양한 나라의 청년들이 함께해 서로 교류하며 ‘분단’과 ‘분쟁’ 그리고 ‘평화’에 대해 나눌 수 있어 의미가 크다.
8월 14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 열린 발대식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순례 참가 청년에게 ‘평화의 바람’이 새겨진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8월 17일 경기도 전곡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마련된 ‘평화부채’ 만들기 행사에서 청년들이 자신들이 만든 부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순례에 참가한 청년들이 8월 18일 철원평화전망대에서 옛 노동당사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순례하며 평화를 외치고 있다.
시리아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 매지디 알자훔씨가 자신이 완성한 ‘평화부채’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민통선 일대에 설치된 지뢰표지판이 생생한 분단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