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인 그레고리오는 강도강간 사건으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가정 파괴범」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나왔고 살인도 안한 젊은 청년이 세명이나 사형 집행되었다.
『수녀님 저는요 서울에서 아버지 한용수씨의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제가 다섯살때 돌아가시어 기억이 아주 희미해요. 위로 형들과 누나 한명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지만 막내인 저는 그때 환경이 좋지 못했어요. 아버지 대신 형들 품에서 사랑은 고사하고 없었으면 좋을 혹같은 짐스런 존재였으니까요. 학교 성적도 하위권에 속했어요. 큰형은 모회사에 상무로계시고 작은형은 서울 모입시학원 교무과장이지요. 형들이 좋은 직장에서 가정을 갖고 잘들 살고 있지만, 그러나 칠순이 넘으신 우리 어머니는요, 하나밖에 없는 출가외인 딸한테 의지하여 살고 계시는 형편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개밥의 도토리격으로 어디에도 끼어 살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런지 형들은 항상 무섭기만 했고, 형수들에게도 눈치가 보이고 잔소리도 듣기 싫고 하여 차차 밖으로 나가돌게 되면서 공부에 취미를 잃어버렸어요. 의지할 때도 없고 저는 사실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림자와 같이 아주 자연스럽게 부랑아 똘만이들과 어울리게 된거예요. 범행에 대한 연습도 없이 아주 대담하게 거리에서 어울려 밤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중 79년 가을 수원 어느 노상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대상으로 노상강도를 하다가 불잡혔어요. 수원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교도소로 이감오게 된것입니다』
상인이가 구속당시 ○○교도소는 미결이 전혀없는 교도소였고,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여서 교화가 제법 활발하게 되었다. 예비자를 포함하여 천주교 신자가 3백 50명이나 되었다. 집회때는 강당이 꽉차고 제법 교회 같은 분위기여서 사순절 교회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였다. 미사전 고백성사 볼때는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제법 길어서 성가를 연습시키는 한편 고백성사 준비도 시켜야 했다.
여름과 겨울에 있는 집회 방학때면 차례로 개인상담을 통해 개인 신상을 파악하려고 애쓰지만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두드러진 특성이 있는 사람 외에는 한사람 한사람을 샅샅이 파악 하긴 힘들었다. 그런데 그레고리오는 얼굴이 유난히 희고 맑은 동안인데다가 여성에 가깝게 부드럽고 말수가 극히 적은 내성적 성격이어서 인상에 남았었다. 그는 80년도 성탄에 그레고리오라는 세례명으토 세례받았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면서 주어진 모든 일에 충실하고 행형성적이 우수하므로 누구보다도 빨리 행형 급수가 올라갔다. 그리고 고시반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마침내 모범수로 선발되어 수원교도소로 이감갔다. 그는 그곳에서 만기 4개월을 남기고 82년 6월 가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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