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ㆍ4호선을 타고 성지순례를 떠나자. 성지의 보고인 서울을 탐방하자.
서울에 사는 신자들도 아마 서울에 산재돼 있는 성지들을 모두 순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마땅히 갈 곳 없는 주말, 쉬이 피로해질 나들이를 지하철을 이용한 성지순례로 산뜻이 해결하자.
▲명동성당 지하무덤
지하철 성지순례의 출발점인 명동성당 지하무덤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군문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앵베로 범 주교와 모방 나 신부, 샤스땅 정 신부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브르뜨니에르 신부, 쁘띠니꼴라 신부, 김성우 안토니오, 무명 순교자 등 모두 9분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 안치돼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앵베르 범 주교와 모방, 샤스땅 신부는 1836년 입국, 선교활동을 하다 3년도 채 못되어 배교자 김순성의 밀고에 의해 많은 신자들이 잡혀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스스로 자수, 순교한 분들이다.
특히 이들은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를 선발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에 유학을 보내는 등 한국인 사제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들의 유해는 처형된 지 20여 일 동안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진 채 있는 것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훔쳐내와 지금의 서강대 자리인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가 1843년 삼성산으로 이장했다.
이후 1901년 명동성당으로 모셔졌고 시복을 앞둔 1924년 로마와 파리외방전교회에서 각기 나눠 모시고 명동성당 지하무덤에는 그 일부가 모셔져 있다.
우리가 애창하고 있고 즐겨듣고 있는 구노의「아베마리아」는 앵베르 범 주교와 신학교 동기인 구노가 범 주교의 순교 소식을 듣고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즉흥적으로 지어낸 성가곡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
서소문 밖 네거리는 1백3위 한국 순교 성인들 중 가장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곳이다.
새남터와 비교해 흔히「평신도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서소문 밖 네거리는 대략 서소문에서 아현동으로 가는 고가차도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부근이라는 설과 현 중앙일보 자리라는 설이 있다.
따라서 1984년 1백3위 한국 순교성인 시성을 기념해 현재 서소문 공원 내에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 자리는 순교자들이 치명한 바로 그 터는 아니지만 인근에 위치한 자리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본래 남소문(광희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운반하던 곳이었으나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순교자의 피로 물든 곳이 됐다.
이곳에서 순교한 대표적 신자들을 보면 초기교회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강완숙 골롬바, 이승훈 베드로, 최필공 토마스, 최창현 요한, 홍교만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정정혜 엘리사벳, 성 남종삼 요한, 성 전장운 요한 등 1839년 기해박해 순교성인 41위와 병인박해 순교성인 3위 등 한국 순교성인 중 44위가 순교한 자리다.
특히 이곳은 정하상 성인과 부친인 정약종과 누이인 정정혜가 함께 순교한 유서 깊은 곳이다.
▲용산상가 뒤 당고개
당고개 성지는 용산구 원효로 2가 만초천변에 해당하는 곳으로 현재 용산전자상가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당고개는 기해박해가 끝날 무렵인 1839년 음력 12월 그믐에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이들은 본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되기로 되었으나 서소문 상인들이 때마침 설 대목장을 보아야 하므로 장사에 방해되지 않게 형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줄 것을 청해 이곳 당고개에서 형이 집행됐다.
「여교우들의 성지」로 불리는 당고개는 이곳에서 순교한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등 9명이 성인위에 올랐고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 마리아만 유독 성인위에 아직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성례 마리아가 옥중에서 어린 자식들의 배고픔을 보고 모성애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배교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소문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순교성인을 탄생시킨 당고개 성지에는 순교비문과 순교성인 아홉 분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 기념 제대와 파티마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탁덕 순교지 새남터
「성직자들의 순교지」인 새남터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 주로 주교, 신부들이 순교한 일등 성지다.
의금부에서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던 곳인 새남터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것을 시작으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땅 신부가 순교했고, 1846년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와 현석문 회장이, 1866년 베르뇌 장 주교와 브르뜨니에르 백 신부, 쁘띠니꼴라 박 신부, 볼리외 서 신부, 도리 김 신부, 쁘르띠에 신 신부, 쁘띠니꼴라 박 신부, 정외배, 우세영 등이 순교한 곳이다.
▲합정동 소재 절두산
마포구 합정동 96-1에 소재한 절두산은 서울과 인천 간의 강변 고속도로와 지하철 2호선의 당산철교가 합정동 방향에서 십자로 교차하는 지점인 한강변에 위치해 있다.
절두산은 세종 때「가을두」「들머리」라 했으며 양화진 주변의 잠두봉과 어울려 이름난 승경지로 중국 사신들이 오면 빼놓지 않고 다녀갔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던 곳이다.
그러나 병인박해로 신자들이 많은 목숨을 잃자「절두산」으로 불리게 됐다.
이곳이 형장으로 간택된 것은 병인년 프랑스 로즈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수교를 요구하면서부터다.「화친을 허락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는 척화비를 세우고 천주교인의 처형 집행지를 서소문과 새남터에서 절두산으로 옮긴 것이다.
대원군은『오랑캐가 이곳 양화진까지 침입하게 된 것은 천주교도들 때문이며 오랑캐에 의해 더럽혀진 강물을 천주교도의 피로 정화시켜야 한다』고 형장을 옮겼다고 한다.
절두산에서 참수당한 신자는 황해도 사람 이의송 프란치스코 외 약 8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갓 모양 지붕의 3층 건물로 지어진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은 순교자들의 고난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수평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 모양이며 지붕 끝에 내리어진 사슬은 족쇄를 표현하고 있다. 이곳 기념관에는 현재 28위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고 김대건 신부 동상과 순교자 석상, 남종삼 성인의 흉상 등이 있다.
◆지하철 순례 코스
주말 및 주일에 성지순례를 떠날 경우나 평일의 경우 모두 명동성당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우선 가족과 함께 명동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지하무덤을 참배한다.
명동대성당 지하무덤에서 출발-도보 5분-지하철 4호선 명동역 착-(사당 방면)-서울역 하차-호암아트홀 방향으로 10여 분 도보-서소문 네거리-서소문 순교자 현양비 참배-서울역 착-(사당 방면)-신용산 하차-청파로 고가 건넘. 용산전자상가 뒷편 도보 20여 분-당고개 성지-용산역 또는 우편 집 중국 방면 도보-새남터 성지(용산역 철길 끼고 있음)-용산역 착-신도림까지 국철 이용-신도림에서 2호선 갈아탐-(시청 방면)-합정역 하차-도보 15여 분-절두산 성지-절두산 지하무덤에서 순례 마침.
◆자동차 순례 코스
명동대성당 지하무덤 참배-퇴계로-회현 고가-서울역 고가-서소문 및 염천교 방향 우회전-서소문 네거리(또는 명동성당-을지로-시청-서소문 네거리)-서소문 순교자 현양비 참배-염천교(지하차도 타면 안 됨)-서울역-청파로-전자상가 고가 내린 후 우회전-당고개 성지-원효대교 방면-현대자동차 강변도로에서 우편집중국쪽으로 좌회전-새남터-성산대교 방면 강변도로 직진-대흥로-합정로타리-좌회전-절두산-절두산 지하묘소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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