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10월 28일은「시한부 종말론」이 종말을 고한 날이었다. 소위 공중들림, 휴거의 불발은 이들 종말교회의 허구성을 낱낱이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해온 갖가지 상식을 넘어서는 주장들은 일찌감치 이런 결말을 예견해주고 있었다.
92년 한해 언론을 비롯한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시한부 종말론이 군내에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88년 8월 이장림 목사가「다미선교회」를 설립하면서부터.
정통 개신교단의 목사였던 이씨는 87년「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예언서를 발간, 수십만권이 팔려나가는 인기를 끌자 다미선교회를 조직하고「천국의 문이 열린다」「경고의 나팔」「92년의 열풍」등 다미(다가올 미래라는 뜻) 시리즈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시한부 종말론을 확산시켜 왔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는 주장들도 많은 경우 기발하다 할만큼 상식밖의 것들이었다.
종말의 구체적인 시기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정하고 있었던 92년 종말의 근거는 첫째, 창세기 1장에 언급된 하느님의 세상창조기간은 곧 인류의 역사기간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에서 비롯된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6일동안 계속되었고 일곱째날은 안식하셨으므로 이 세상역사도 하느님 시간으로 6일간 지속되고 그후에는 안식의 하루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다『주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Ⅱ베드3, 8)는 성서 귀절이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덧붙혀진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하느님의 시간으로는 6일, 인간의 사간으로는 6천년동안 지속되고 그후에는 안식의「천년왕국」(묵시록20)이 있다는 것.
이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시기는 바로 아담이 창조된 때로부터 6천년이 되는 서기 2천이다.
따라서 99년까지는 인류역사가 모두 끝날 수 밖에 없고 그 이전에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므로 세상종말의 시작은 「99-7=92」년이라는 주장이다.
이밖에 구약의 7대 절기와 마태오 복음 24, 32~35절의 무화과나무 비유, 종말때 나타난다고 하는 적그리스도 (다니엘 7장, 묵시록13장)에 대한 자의적 해석도 92년 종말을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됐다.
세기말적 증후군으로 표현되기도 시한부 종말론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사회심리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시한부 종말론에 쉽게 유혹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고통받고 있는 이들.
이들은 아마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세상,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는』세상을 갈구했을 것이다.
종말교회들은 이들에게 『공부도, 먹고 살 걱정도 없는 천국생활』을 효과적으로 제시했고 그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고 선전했다. 천국의 「다미타운」을 기다리는 이들에겐 따라서 직장·가정·재산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신한부 종말론의 확산은 그만큼 현실세계의 종말을 기대하는 잠재적 심리가 널리 퍼져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또 현실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시대적 징표이기도 한것이다.
한편으로 시한부 종말론에 빠지는 자들 모두가 기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성종교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중산층화 되어가는 교회, 집단적 이기심이 팽배한 교회는 사회에서 소외당한 이들을 제대로 품어 안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심리적 특성은 이들 집단의 열성과 광기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사회와 교회로부터 당하는 이중의 소외는 집단의 응집성을 강화시키고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희구하는 갖가지 비정상적인 생활야태를 표출시켰다.
한때 전국적으로 2백 50여개 교회에 신자수 2만여명을 헤아리던 「휴거종말론」은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다.
휴거가 불발되자 교회마다 신도와 가족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일부 교회에서 기물을 파손하고 당교회 목사를 폭행하는 등 혼란이 있었으나 당초 우려했던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일부 맹신도들의 비이성적인 신앙행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신자 개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 이를 지켜본 대다수 관계자들의 지적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시한부 종말론은 우리 사회와 기성종교의 한계를 드러내 보여준 교훈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좌절한 사람들의 욕구와 희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사회와 이들을 따뜻한 하느님의 품으로 끌어 들이기는커녕 「이단」으로 몰아세운 기성교회의 배타성이 「휴거신드롬」을 낳은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은 역사적으로 사회가 불안할 때 수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지만 92년 종말설의 극성은 「정치불안」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교회는 지나친 내세지향적·현세도피적 신앙에서 탈피, 현세 삶에서의 사랑실천이라는 현실참여적 종말신앙을 가르치고 증거할 수 있도록 자성과 쇄신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92년 종말론자들은 이사회, 특히 기성교회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예언자적 역할을 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는 무엇때문에 있는가』라고 하는 교회의 존립목적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미선교회로 신도들이 다시 모이고 있으며, 그 이유가 그들을 이단시하는 기성교회의 배타성때문이라는 최근 한 언론의 보도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흔히 「종말적」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시대상황이 우리 사회에 늘 잠재되어 있듯이 시한부 종말론도 그렇게 우리 사회안에 잠재된 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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