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15, 11~32)
이 젊은이는 아무런 한 뚜렷한 목적없이 가출하였음이 분명하다. 복음서에서는「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결국은 돈이 다 떨어져 알거지가 되었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할 뿐이다. 돈을 얼마나 가지고 떠났는지 또는 그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방탕한 생활은 사람을 궁지에 몰아 넣는다는 것이 교훈으로 제시 될 뿐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청년은 때마침 몰아닥친 흉년의 재앙을 겪어야만 했다. 흉년이 들면 누구나 허리를 졸라매는 궁핍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고무친(四顧無親)빈털터리가 된 이 청년은 하루하루가 암담할 뿐이다. 젊은 이는 궁지에 몰리면 잘못되기 쉽다.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질을 하거나 한다. 그러나 이 청년은 심성이 착한지라 그러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고생이 되더라도 자기 힘으로 벌어먹을 생각을 한것이다.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할 작정이었다.
당시 이국땅에 흩어져 있는 유대아인들은 약 4백만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그러니 동족애가 깊었던 그들의 속성으로 동족인 히브리인들을 찾아 갔음직한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어느 이방인 집에 얹혀서 더부살이를 하기로 했다. 그것은 유대아인으로서의 긍지를 저버리는 일이었고 민족적인 의무와 명예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이방인 집에서는 단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교예식을 곁드린 식사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의 종교예식적 식사는 인생은 즐겁다는 표시로 웃음꽃을 피우는 것을 본령으로 했다(전도 10장19). 종교적으로 식사때가 정해져 있고 주인과 손님의 예의작법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이런 식사를 못하는 유대아인은 불행한 자이다. 율법을 모르는 자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경건한 유대아인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 뿐인가. 돼지를 기르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다. 그는 정결치 못한 동물과 늘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레위 11장 7).
이상과 같은 생활을 하는 유대아인은 자동적으로 민족적인 종교를 버린 자이고 하느님을 버린 자이다. 그런데 우리의 탕자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 되었고 이방안과 함께 사는 자체로 하느님을 저버린 반역자가 된 것이다. 「게걸이 들리고 술에 골아 떨어지면 패망이 찾아 든다」(잠언 23장 21)라는 말씀이 탕자에게 진실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를 채용한 이방인은 그에게 돼지를 치게 하였고 품값이나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 이렇듯 부당한 취급을 받는 유대아인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야겠지만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여기서 쥐엄나무 열매라 했지만 지중해 일대서 자라는 콩과식물로서 영어로는 Carob-pod, 불어로는 Caroubier, 학명으로는 Ceratonia Siligua라 불리는 식물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하여튼 그 열매의 콩깍지를 그들은 돼지에게 주었던 것이다. 우리의 돼지들처럼 돼지의 주식은 돼지죽이었을 것이지만 오늘의 비유에서는 탕자의 비참의 극한 상황을 나타내려고 그 콩깍지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 것이다. 유대아인들에게는「참회하는 자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어라」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이 열매마저도 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지만 왜 못 먹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유대아인들은 돼지를 기를 수 없는 것은 물론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더러운 일이다. 「돼지를 기르고 자식에게 그리스(이방인)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이것이 유대아인들의 교훈이었다. 돼지를 먹이는 것이 유대아인에게 천해질대로 천해진 상태를 말할뿐 아니라 먹이를 돼지와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천해진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우리의 탕자는 이렇게 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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