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인류 최대의 적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이 무서운 것은 죽음 그 자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또한 그 속을 다녀온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그 캄캄한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에 의하면 죽음이 꼭 무섭고 두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활이라는 위대한 세계가 죽음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죽음은 실로 은총과 축복의 관문이었습니다.
인생은 진정 죽음으로 끝장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무도 억울하며 세상만사 우주 전체가 모순이 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성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세상에는 부조리가 많습니다.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이 많습니다. 한 마디로 혼란이요 엉망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모순과 부조리로 끝장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기에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사건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머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모두에게 나타나신 것도 아닙니다. 한정된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그분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구 하나 믿지도 않았고 호기심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이 비어 있다고 외쳤을 때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주제 파악을 못했습니다.
아무도 제자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랬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오신다 해도 미친 소리쯤으로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갇혀있는 자기 자신밖에 바라보지를 못합니다. 그 이상은 절대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죽음은 인간의 일이요 부활은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중 어떤 형제가 아주 괴물이었습니다. 세상에 자기밖에 몰랐으며 얼마나 이기적인지 살아가는 그 모습이 참으로 치사하고 유치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너는 팔자소관이 어차피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인가 보다」하여 신앙을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에 큰 해를 끼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부가 되고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뜬금없이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부부가 1년 전에 세례를 받았다고 했으며 하나있는 아들은 신학교에 보내고 하나있는 딸은 수녀원에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가 농담하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화재를 만나 꼼짝없이 죽는 것인데 기적으로 살고 나서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걸레조각 같던 그 성질들은 다 사라져 버렸고 하느님 앞에 자기를 부술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그는 그 속담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저 사람은 아주 지옥에 갈 놈이라고 내가 점을 찍어 놓았는데 그 판단과 멸시를 넘어서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부활을 실감나게 묵상합니다.
부활하기 위해선 먼저 죽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서는 절대로 부활의 새벽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을 믿기 위해서도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만 이 믿음의 문이 참되게 열리며 그 열린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부활을 앞당겨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백년 부활하신다 해도 자신이 부활하지 못하면 신앙은 허깨비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서 부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날의 새벽이 돌아온다 해도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새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믿고 그리고 우리도 악습의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합시다.
모두에게 부활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지난호까지 수고해주신 대전교구 홍보국장 방윤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미국 마이애미 한인본당 주임 강길웅 신부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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