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여행길은 극기(克己)의 길이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특히 예수의 제자들에게 모범으로 제시한 길이기도 하다. 예수는 지금 페레아지방 즉 요르단강 건너편 지방에서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 당신을 따르라고 제자들에게 수행소명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예수께서는 길을 가시면서 늘 가르치고 계시다. 그의 길은 선교의 여행길이다. 그는 하느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길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 구원의 길은 구약성서에 예언되었지만 지금 당신안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루가 4,21). 예수께서는 길을 가시면서 이 길이 하느님의 길이며 이 길은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의 나라로 가는 길임을 힘주어 가르치고 있다(사도16,17).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은 결국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소식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는 예루살렘 마지막 상경 길에서는 구원에 관한 설교의 말씀이 많으실 것이고 이 말씀은 청중들에게 이채롭게 들릴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군중속에서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겠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질문자가 어떤 부류에 속한 사람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마음속으로 천국에 갈 사람은 몇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느냐 하는 문제는 당시 유대아인들에게는 메시아의 출현문제와 민족의 해방문제와 더불어 까다로운 문제로 토론되었다.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상경길에 이와 비슷한 질문이 유대아인들에게서 던져졌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루가17,20)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루가18,18)는 등.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다가올 새 나라에서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나라에 참여할 것이라고 가르쳤고 유대아교에서는 마지막 구원을 얻을 사람의 수가 많으냐 적으냐라는 문제를 토론하였는데 구약성서의 외경 제4에즈라서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오늘의 질문자는 예수의 설교말씀을 듣고 아마도 천국의 입국자는 극소수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구원받을 사람」이란 사상 초대 사도교회의 주관심사이기도 하였다 (사도2,47:고린전1,18:고린후2,15). 그러나 이말은 사도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종말론적 구원으로 알아 들었다.
예수의 설교목적은 구원 받을 사람들의 수를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의 대답은 세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말씀을 듣기만 한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부터 회개하고 예수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구원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하느님의 선택받은 조상들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에 젖어 있던 유대아인들 중에는 극소수가 구원되겠지만 세계 만방의 이방인들이 주님의 잔치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첫번째는 좁은 문의 가르침이다. 『많은 사람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 가려고 하겠지만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은 우선은 선민의 자부심을 가졌던 유대아인들을 가리켰고 예수후 교회에서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안락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 길은 넓어 보이는 큰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문의 영상을 들어 삶과 죽음을 설명하는 은유법은 전통적인 것으로 구약성서에는 죽음의 문이 있고(시편9,14:욥기38,17), 정의의 문(시편18,19), 삶의 길과 죽음의 길(예레21,8), 죽음으로 인도하는 쉬운 길(전도21,10)이 있다.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 가도록 온 힘을 다하라고 하신다. 좁은 문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을 말한다. 루가는 이 좁은 문이 잔치방으로 들어 가는 문을 떠올리고 마태오는 한 도시의 성문을 가리키는데 큰 성문은 멸망의 길로 나가는 문이고 좁은 성문은 삶의 길로 나가는 문이다. 역시 좁은 문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고통의 길을 걷고 나서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리길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만이 나를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부르짖었고(디모후4,7) 제자 디모테오게는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고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디모전1,12)라고 했다.
그 싸움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올라가는 죽음의 싸움이며, 이 싸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온갖 힘을 경주하신 그런 싸움이다. 이 길이 힘들다 해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결정해야 한다. 한번 문이 닫힌 다음에는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 때에 밖에 서서 주님을 부르며 주님과 함께 먹고 마셨고 거리에서 주님의 설교를 들었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며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했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변명하여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그들은 진작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악을 일삼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다』고 한 사람들은 사도교회때 이단설과 분열을 일삼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구원판결때에 주님곁을 물러나야 할것이고 멀리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리고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서남북 세계 만방에서 이방인들이 주님과 함께 잔치상에 앉아 있게 될 것인데 하느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며 예수를 반대하던 유대아인들은 어두움의 나라에서 이것을 보고 배를 아파할 것이다. 실로 첫째였던 자들이 말째가 되고 말째였던 사람들이 첫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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