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지금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지만 아직 헤로데 안티파스의 분봉국에서 마지막 전도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 지방은 갈릴래아와 요르단강 동쪽에 위치한 페레아를 포함하고 있으며 헤로데는 기원전 4년부터 기원후 39년까지 통치한 영주로서 예수 탄생 당시 무고한 어린이들을 대학살한 헤로데 대왕은 그의 아버지였다.
헤로데 대왕은 순수 유대아 혈통이 아닌 에돔족의 이두매아가문 출신으로 유대아의 영웅 마카베오 가문의 마지막 통치자 히르카누스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유대아의 통지들 이어받았고 유대아의 점령군 로마의 임명을 받아 정식으로 유대아의 왕이 되어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통치하기 어려운 유대아 나라를 뛰어난 능력과 끊임없는 인내로 37년동안 평화롭게 통치하였다. 그는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기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만 두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모두 죽인 후 같은 해에 자기도 죽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영지는 그의 아들들이 4분하여 각각 분봉왕 또는 명주가 되었는데 그의 아버지 헤로데 대왕의 열명의 처중 말타케 둘째 아들이고 헤로데 대왕의 10명의 아들중 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 아들들이 아비의 왕위계승권을 놓고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때 헤로데 안티파스도 이 싸움에 끼어 들었으나 친형인 아르켈라오스(마태 2, 22)에게 패배하였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을 당시 헤로데 안티파스는 그저 갈릴래아와 페레아의 영주였다. 그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것도 이곳이었는데 복음서에서 이야기하는 대로(마르 6, 14~29: 마태 14, 1~12: 루가 3, 19~20: 9, 7~9) 그는 인접국 나바테아의 공주와 결혼하였다가 헤로디아스와 결혼하기 위하여 나바테아 공주와 이혼하였다. 헤로디아스는 이복 형제 헤로데 필립의 아내였다. 이 부도덕한 결혼을 고발하였다가 정의의 순교자가 된 사림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당시의 로마 총독은 본시오 빌라도였음은 다 아는 바이고 헤로데 안티파스는 형제들과의 왕권쟁탈전에서 로마인들에게 아부하느라고 자기 지방에 도시를 세워 로마황제의 이름을 따라 티베리우스라고 이름하고 로마 황제를 방문하느라 수선을 떨었지만 실패하였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체포되었을 때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래아인이라는 것을 알고 헤로데 안티파스에게로 압송하였다고 했는데 (루가 2, 6~12) 안티파스는 공교롭게도 그때 예루살렘에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저런 상황에 처해 있던 안티파스는 예언자라고 생각되는 예수가 자기 영지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불안했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후 늘 불안에 싸여 있던 헤로데는(루가9, 7~9)자기 영지안에서 어떠한 소요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편 그 영지에 있던 바리리사이파 사람들은 헤로데와 좋은 관계에 있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해서는 같은 태도였다.
하여튼 그들은 예수께 와서 헤로데가 예수들 죽이려고 하니 빨리 떠나라고 일러 주었다. 복음서에서 바리사이파하면 예수의 적대자 들로 대표되었는데 헤로데에게 예수를 잡아 죽이라고 부추기지 않고 예수가 그 지역을 떠나기를 독촉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헤로데의 심부름으로 그랬는지 저희들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복음서의 의도는 예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과 이어지는 예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복음사가는 말하려는 것만이 확실하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한다.『그 여우에게 가서 전하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준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 일을 완성한다』라고. 여기서 예수가 헤로데를 여우라고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다. 여우는 간교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세자 요한을 죽인 일, 왕칭호를 받으려고 로마황제에게 아부한 일들을 생각하여 여우라고 했는가.
그러나 예수는 누구를 정치적으로 비난하지 않으셨다. 라삐문서에는 사자와 비교하여 여우는 비겁한 동물로 되어 있다.『사자의 꼬리가 될지언정 여우의 머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히브리어로 여우는「수알(sual)」인데 이 말은 다윗의 적대자「사울(saul)」에 빗대어 한 말일 수 있다. 다윗가문에서 태어난 메시아를 사자라고 표현한 성서말씀 (창세 49, 9: 묵시 5, 15)에 비추어 헤로데는 다윗을 박해한 사울 즉 여우에 해당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구세사업을 계속하고 사흘날에 그 일을 끝낸다라는 말씀은 물론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말씀이다.
이 시간은 하루 이틀 사흘의 날수가 아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성전봉헌절 후였으니 1월말경이었다.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용은 과월절이니 3월말에서 4월초경이다. 그러니 아직 2, 3개월이 남아 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희생양이 된다면 그것은 예언자들 특히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예루살렘외에 다른 데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예수의 구세사적 여행은 예언자들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절정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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