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온통 구세주 탄생을 알리는 캐롤과 크리스마스 장식 등으로 화력하고 또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분위기에 싸여 있는 동안 우리 주위의 많은 불우이웃들은 더욱 외로움을 느끼며 쓸쓸한 성탄을 맞게 된다. 특히 부모를 잃은 소년소녀 가장들이나 국내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등 많은 불우이웃들은 우리가 들떠 있는 동안 더 많은 외로움과 추위속에서 남모르는 아픔을 삭여야 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러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맞아 부모의 갑작스런 사망과 무책임 등으로 소년가장이 된 승열이 가족과 오직 삶을 위해 불법체류하고 있는 필리핀 근로자들을 찾아 그들이 기다리는 성탄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소년소녀가장이 기다리는 성탄
성탄 엄마와 함께 지내는게 “소원”
부친 사망후 모친 가출…생계 막막
국교 육상대표로 금메달 꿈 키워
『집나간 엄마가 돌아올까봐 요즘도 동생과 함께 동네 입구에 서서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리다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 가곤 해요. 친구 윤철이의 삼촌도 추석이라고 왔는데 우리 엄마는 우리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요』
집나간 엄마가 돌아오길 바라며 마을끝 산모퉁이에 앉아 배고픔을 삼키며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렸지만 엄마가 끝내 나타나지 않아 그날밤 밤새도록 울었다는 유승열 어린이.
경기도 용인군 기흥읍 농서리 134번지, 몇년동안 손보지 않아 쓰러질듯 변해버린 시골농가에 올해 일흔살의 할머니(방안젤라)와 여동생 진아(10세)와 함께 살고 있는 승열이는 이제 겨우 12살박이의 철없는 소년가장이다.
같은 또래의 가장 친한 친구 옆집의 윤철이는 크리스마스 때 맛있는 케익을 선물로 달라고 산타할아버지에게 기도한다고 하지만 승열이의 마음속에는 산타할아버지 대신에 엄마가 돌아왔으면 하는 소망밖에는 없다. 승열이가 이처럼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6년전인 86년 당시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던 아빠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엄마는 사고 보상비로 받은 1천만원을 들고 6세와 4세인 자신과 동생 진아를 두고 떠나 이제까지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또 소풍 갈 때와 운동회 때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고 친구들이 엄마따라 시장갈 때 나도 우리 엄마하고 시장엘 한번 가봤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나요. 아플 때도 엄마 생각 나고요』
말을 잇지 못하는 승열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10살박이 진아의 눈에도 덩달아 눈물이 고이고 오빠는 다시 진아의 눈물을 닦으며 울지 말라고 달랜다.
이제까지는 겨우 할머니가 마을에 나가 밭의 김을 매주고 얻은 돈으로 입에 풀칠할 정도로 살았지만 이제는 할머니마저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 일을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살아가기가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이들에겐 날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떠돌이 삼촌이 주소를 옮겨가지 안아 읍사무소에서 배급을 지급하는 생활보호대상자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아 정부의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승열이는 이런 환경속에 살아가면서도 육상 국가대표 선수가 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요즘 육상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기흥국민학교 육상대표인 승열이는 교내에서는 물론 용인군 체육대회 국교부문에서 입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는 유망한 꿈나무이다.
특히 승열이는『훌륭한 육상선수가 되고 공부도 잘해서 할머니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리고 엄마를 꼭 찾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승열이의 담임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승열이가 학교에서는 엄마 아빠가 있는 어린이와 전혀 구별없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 등 여러 면에서 모범적이라고 설명하고 육상뿐 아니라 산수는 늘 1백점을 맞는다고 자랑을 잊지 않았다.
승열이 오누이를 돌보고 있는 방안젤라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서인지 올해 들어 부쩍 건강이 나빠져 아이들 밥만 겨우 지을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다.
그래도 승열이 할머니는 승열이가 스무살 때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승열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리기때문에 큰 불평없이 할머니 말을 잘듣고 따르지만 이제부터 걱정이 됩니다. 승열이와 진아가 성격이 예민해지는 사춘기가 되면 엄마가 있어야하는데…』
승열이 할머니는 어린 핏덩이를 두고 가출한 며느리가 한없이 밉지만 어린 손주들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현재 승열이 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용인군으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경기도 평택에서는 평택성당을 다녔었다. 그곳에서 영세와 견진은 물론 교통사고로 사망한 승열이 아버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주기도 했지만 기흥으로 이사온 후 성당이 멀고 살기가 어려워진 이유로 냉담 중에 있다.
할머니의 소망이 있다면 두 손주와 함께 가까운 성당을 찾아 손주들을 영세시키고 교통사고로 죽은 승열이 아버지를 위해 연미사를 봉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승열이 할머니는 지금 성당을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승열이와 진아에게 성모님께 기도하게 하고 신앙을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할머니의 속을 썩이지 않고 착하게 자라고 하루 먹을 끼니가 없을 때도 성모님이 보냈는지 먹을 것이 들어 올 때도 있다는 방할머니는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손주들이 크리스마스나 명절이 되면 한창 좋아할 나이인데도 오히려 더 기가 죽고 위축돼 보이는 것 같아 차라리 명절같은 것이 없었으면 한다』는 방안젤라 할머니의 말이 이번 크리스마스와 설을 맞는 승열이 가족의 솔직한 고백으로 들려오고 있다.
승열이와 진아에게 산타할아버지가 건네주는 맛있는 케익을 선물할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가 이들 오누이의 어깨에 씌워준 멍에를 벗겨주는 것이 우리모두에게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영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哲>
◆외국인 근로자들이 고대하는 성탄
성탄선물로 외국인노동법 개선 희망
하루 16시간 月 40만원 조건 “열악”
구로3동본당 위로의 성탄 잔치
가난이 싫어, 굶주린 가족들의 배고픔을 채워주기 위해 이국 땅 한국을 찾아 품앗이 삶을 살고 있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구로3동 본당 교육관에서 12월 20일 오후 1시에 열린 필리핀 공동체 성탄잔치는 2백여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이 모여 고향 떠난 타향살이의 시름도 잠시 잊은 채 한바탕 즐거운 놀이마당을 펼쳤다.
하지만 노래자랑과 게임, 재담으로 성탄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기쁨뒤에 숨겨진 외로움의 골이 불거져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케 했다.『한국에 와서 많은 새 친구들과 성탄절을 지내게 돼 참으로 기쁘지만 이 자리를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안타깝다』라는 파로(Paro·32세)씨는 『가족없이 성탄절을 보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파로씨는 『필리핀에서는 성탄 9일 전부터 매일 성당에 나가 9일 기도와 함께 구유 앞에 가난한 이웃을 위해 옷가지와 음식을 놓아둔다』고 회상한 후 동네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아기 예수의 선물을 드리던 일을 잊을 수 없어 했다.
『옛날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께 선물을 봉헌했던 성탄전야에 노인들께 선물을 전하는 것은 필리핀의 오랜 풍습』이라고 설명한 그는 한국에선 이런 선물들을 나눌 어른이 없어 무척 쓸쓸해 했다.
파로씨는 또한 『한국에서 처음 맞는 성탄이라 가족 생각이 무척 난다』면서 『성탄절에 친구끼리 함께 음식을 나누고 캐롤도 부르고 싶지만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기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해 가족들을 보호하고 건강을 지켜주길 희망한 파로씨는 『성탄선물로 외국인 노동법이 개선돼 한국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길』소망했다.
구로3동본당 필리핀 공동체에 나오는 2백여명의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고용보증을 받은 어느 정도 안정된 근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고용 유효기한은 법적으로 6개월로 명시돼 있어 고용 연장을 위해 필리핀 근로자 대부분은 몸을 아끼지 않고 혹사하고 있다.
성실한 고용주을 만나 열심히 일하게 되면 필리핀에서 한달 수익을 여기에서 하루만에 벌 수 있기에 이들은 하루 평균 13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14살난 아이와 7개월된 뱃속의 아기까지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라는 서지오 바쿠위트(Sergio Baouyut)씨는 『필리핀에 비해 적지않은 한국의 임금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필리핀의 적은 월급으론 대식구를 먹여 살릴 수 없고 교육시킬 수 없어 한국에 왔다는 그는 염색공장에서 월 40만원의 입금을 받고 있다.『마침 오늘 필리핀 가족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바쿠위트씨는 『아내와 아이들이 성탄절을 함께 보내지 못함을 섭섭해 전화통을 잡고 함께 울었다』고 말했다.
바쿠위트씨는 우리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한국에서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빠의 사랑』이라면서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지내진 못하지만 늘 마음안에 사랑으로 머물고 있음』을 고백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소망한다는 필리핀 근로자들은 혹 애써 얻은 직장을 잃을까봐 신변관리에 최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
전혀 다른 기후와 음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것을 지켜본 이들은 겨울이 가장 고통스런 짐이다.
필리핀에선 매일 목욕을 하고 특별한 몸관리 없이도 별탈없이 지내지만 추운 겨울을 첫 경험한 이들은 찬물에 손대는 것조차 힘든 일이란다.
그래서 필리핀 근로자들은 매일 화살기도로 『일할 수 있는 힘과 건강을 허락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혹 잘못 실수로 산재를 당하면 아무런 보상없이 불구의 몸으로 고국에 돌아가야 하기에 이들은 건강을 목숨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말문을 연 조나단(Jonadan. 27세)씨는 『야근까지 하루 15시간이상씩 일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더 많은 작업을 종용한다』고 토로했다.
조나단씨는 『말이 안 통한다고 해서 욕을 하거나 심지어 때리기도 한다』면서 『몸으로 힘든 것은 이겨낼 수 있지만 인격적 모독과 함 바보취급 당할 때는 견디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기준 마련과 지난 8월부터 실시되는 외국인 근로자 산재보험 등 차츰 자신들을 보는 한국인들의 눈이 개선되고 있어 기쁘다는 필리핀 근로자들은 더 많은 이들의 인식전환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외국인 고용법이 보장되길 고대했다.
『자신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많은 한국의 은인들 때문에 결코 외롭지 만은 않다』고 답하는 구로 3동본당 필리핀 근로자 공동체는 『내년 성탄에는 가족과 함께 한국은인들을 초대해 필리핀에서 멋진 성탄 잔치를 열 것』을 희망했다.
성탄잔치 마침기도로 고통중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한 구로3동 본당 필리핀 근로자 공동체는 아기예수께서 온세상을 축복하시도록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한국에서의 첫 성탄절을 보냈다. <吉>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