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이란 동방교회의 성화를 지칭하는 말로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있게 명상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신앙의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그중에서도 이콘들은 아주 깊은 신학과 명성을 담고 있는 신앙의 상징이며 교리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은혜로운 성탄을 맞아 이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이콘의 영성을 이 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1, 서론
이콘이란 성화, 그중에서도 특히 동방교회의 성화를 지칭한다.
이콘이란 말은 형상(形象)을 뜻하는 그리이스어(Eikon)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이 말은 초기 그리스도교시대에서는 단순히 어떠한 형상을 의미하여 사도 바오로도 골로사이서 1장 1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적이며 불가시적인 것을 초월하여 가시적인 것으로 해주는데 형상의 목적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콘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밀을 도와주며 하느님의 신비를 명상하도록 이끌어주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일찍부터 사후의 세계 등 영의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왔다. 그리스도교가 생겨난 이후로도 사람들은 처음 한동안은 유대교의 영향으로 인물묘사 등을 꺼려했었으나 정차로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은 일반 세속적인 그림들과는 구별되어야 했으므로 어떤 정형(定型)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 정형들은 또한 후대 화가들에게도 계승되어 오늘에까지 답습되어 오고 있다. 특히 동방교회 지역에서는 서방교회와 달리 그 시대에 따른 어떠한 유형이나 변형이 쉽게 용인되지 않았으며 오직 예로부터 내려오는 본보기 그림과 그에 따른 규정들을 지켜야만 되었다. 즉 그리스도는 무명천에 신비롭게 찍혀진 「만딜리온」이라는 그림이 기본이 되었고, 성모는 聖 루가가 그렸다는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호데게트 리아) 성화」를 기본으로 하여 제작 되었는데 각 시대에 따라 또 각 지역과 민족적 특성에 따라 또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기적에 따라 조금씩의 변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방교회와 같이 육감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모습의 이콘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개가 색이 어둡고, 그려진 인물의 표정이 굳어 있으며, 알 수 없는 묘사들이 곁들여 있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세례자 요한이 날개를 달고 있다든지, 크리스토폴 성인은 머리를 개(犬)로 그린다든지).
그러므로 인간적인 모습의 성화들에 익숙해 있는 우리 서방교회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실지로 어떤이는 서낭당이나 신당에 그려진 그림과 비슷하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콘들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아주 깊은 신학과 영성을 담고 있는 신앙의 상징이며,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
적인 성경이요, 교리서 그 자체인 것이다. 실지로 동방교회의 성당 내부에 들어서서 그 안에 그려진 일련의 이콘들을 조용히 보고 있으면 창세기 1장부터 요한 묵시록까지의 거의 모든 성서의 테마들과 구세사의 주요 장면들이, 비록 글을 모르는 문맹자라 할지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무언의 교리교사의 역할까지 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따라 우리에게 그 어느때 보다도 가깝게 다가온 동방교회와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며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깊은 영성과 신학을 몇가지 이론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2, 예수성탄 이콘
이 이콘의 원형(原型)이 되는 초기의 작품들은 적어도 5세기경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구도는 베들레헴의 그리스도 탄생 교회에서 순례자들이 구입하던 작은 기름병에 새겨지던 장식의 주제로 자주 사용되었었다. 그 구도는 육회 사건의 본질과 그것이 자연세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결과로 미래를 희망케 하는 힘을 나타내 준다. 성 그레고리오는 『그것은 창조의 축제만이 아니라 재창조의 축제요 부활이며, 전체 세계를 성화시킨 것이다』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정교회에서의 성탄의 본질을 묘사했다. 즉 하느님의 육화를 통하여 전체 창조 질서는 창조 질서의 진정한 의미와 그것의 존재(즉 변형)의 목적인 완선의 가능성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콘은 창조 질서의 표본이며, 다음의 고대 전례 시편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봉사를 묘사한다.
『오, 그리스도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당신께 우리가 무엇을 드릴 수 있사오리까? 당신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창조물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천사들은 찬양의 시를 바치여, 하늘은 별을 드리고, 현자(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의 예물을 선사하고, 양치기(목사)들은 그들의 놀라움을 바치며, 땅은 동굴과 광야의 구유를 마련합니다. 우리는 당신께 어머니, 동정녀 어머니를 드립니다』
이 이콘의 윗부분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반원형의 천체는 이 세상 저넘어(來世)를 향해 열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묘사는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의 이콘과 형성용(예수의 거룩한 변모)의 이콘과 지옥의 이콘에서도 나타난다.
천체 아래의 별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매우 가까이 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별은 신앙의 눈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 그레고리오는 이 별에 대해서 『유대인들에게는 감추셨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비추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그려진 천사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중의 봉사를 수행한다. 이 이콘 안에서 어떤 천사들은 그들의 머리를 하늘의 공간으로 향한 채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반면에 다른 천사는 아래로 몸을 구부리고 있다. 이들 하느님의 사자(使者)들은 정교회의 전승이 기술하고 있듯이 창조 질서의 한 부분으로 묘사된다.
우측 중간에 그려진 목자는 마리아처럼 Anawim, 즉 의롭고 가난한 자로 이스라엘의 신앙심을 대표한다. 목자의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완전히 겁에 질려 있다. 그러나 그는 즈가리야처럼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스스로 아기(예수님)를 찬양하고 노래한다. 즉 천상의 노래에 대하여 찬미와 감사의 인간적인 노래를 보태어 자신의 갖고 있는 목동의 피리를 연주한다.
그리고 동굴 왼 편에 동방박사들이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여기서 동방박사들은 구원의 시기와 지혜의 도래를 알려주는 계시를 묘사하고, 때로 동방 박사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종족으로도 묘사되고 있으며, 이사야 예언서의 다음 말씀으로 그들 존재의 충만성을 지닌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 들며 재왕들이 솟아 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 오는구나. 머리를 들고 사방을 둘러 보아라. 모두 너에게 모여 오고 있지 않느냐?』(이사야 80, 3)
목자들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대표한다면 동방박사들은 이방인들의 신앙을 대표하는 것이다.
오른쪽 구석 아랫부분에 그리스도는 어느 인간아기들처럼 출생후 물로 씻겨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요셉이 아기를 낳는 마리아를 돕기 위해서 그녀들을 고용했고, 그가 그녀들에게 이 아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들은 웃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들은 불신앙의 결과로서, 그들의 팔은 그 자리에서 말라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그 아기를 목욕시킬 때, 그들의 말라버린 팔은 다시 완전해졌다. 이것은 신앙에 선행하는 정체상태를 가리키는데, 신앙이 나타나면 온전성이 회복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의 중앙의 동굴은 죽음의 상징이며, 동굴은 또한 세상이 그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며, 죽음의 그늘 속에서 생명의 빛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구유 또한 그 아이에게 세상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 「세상」은 광야로서 보여지고 있다. 이것은 출애급시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와 이 삭막한 지역에서 탄생한 생명의 땅 사이의 대조를 가능하게 한다. 사막이란 모티브는 세상에 대한 거부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막은 텅 빈 곳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모티브는 요한 복음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요한1, 10~11).
여기서 구유는 일반적인 건초 여물통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무덤이고 포대기 옷은 아기가 입게 될 수의를 예시해주고 있다. 이 점은 우리들에게 육화와 부활의 연결을 간결하게 제시해주고, 또 그것에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황소화 당나귀의 존재는 단순히 부가적인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동굴 세계 전체가 하느님의 아들의 육화를 인식하고 있음을 지시해 준다. 하느님의 아들은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도 구세주이다. 그들의 존재는 예언자 이사야 예언의 성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없이 구는구나』(이사야 1, 3)
그리고 그 동굴앞에는 동정녀 어머니(동정 성모)가 있다. 그녀는 그 주위에서 선회하는 모든 것들의 중심점이다. 동방교회에서는 그녀를 하느님에 대한 인류의 가장 고귀한 감사의 제물로 믿고 있다. kallistos ware는 전체 구도안에 그녀가 차지한 위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마리아의 위치는 우리 동방 정교회가 신학과 기도안에서 어떻게 성모님을 최고의 존경의 위치로 묘사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그녀는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제물인 것이다』
동방 정교회는 마리아를 새 에와로서 존경한다. 첫번째 에와가 『모든 생명(인류)의 어머니』(창세기3, 20)가 되었던 것과 같이, 동정 성모는 새로운 인류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녀의 아드님의 육화를 통하여 들어올려지고 거룩하게 되었다. 비록 그녀가 아기예수 바로 다음의 가장 가까운 곳에 쉬고 있지만 그녀가 동굴의 바깥 쪽에 기대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새로운 인류의 맏이(첫 탄생자)요 그녀의 완성된 삶에 대한 순명으로 인해 들어올려졌다.
요셉은 이 이콘들위에 펼쳐지는 사건들로부터 다소의 거리가 있는 한편의 구석에 위치해 있고, 그의 인상은 명백하게 그 자신이 이 사건의 경이로움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표현한다. 그는 의로움 이스라엘인을 대표하고-비록 유대인의 법률에 순명했지만-자신의 새 아내가 간음이라는 화제위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보호할 권리가 주어져 있음을 알았다. 늙은 목자(양치기)로 묘사한 악마는 그로 하여금 불신에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 요셉 앞에 자리하고 있다. 성모님의 얼굴은 그의 고통을 다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을 향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하나의 연민이며 신앙에 있어서의 내적인 어려움(心戰)과 의심으로 괴로와하는 이들을 위한 상징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탄생에 관한 이콘은 육화의 신비가 바로 하나의 신비 그 자체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동방박사들처럼 만일 우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기를 원한다면, 우리들은 반드시 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뿐 아니라 배움으로부터 오는 불만들을 없애야만 할 것이다.
3, 성 니콜라이 (니콜라스)
해마다 성탄이 되면 우리는 산타클로스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인물이 성 니콜라스였음을 우리는 잘 알 것이다. 성 니콜라이는 270년 소아시아 지방 미라의 대주교였다. 그는 동방교회의 천명이 넘는 성인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들 중의 하나로 특히 러시아에서 어린이들과, 가난한 자들, 그리고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위험에서 구해주는 등의 모범적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성탄시기가 오면 이웃을 사랑하는 모범으로 공경하고 기억하고 있다.
이 이콘은 주교복장을 한 니콜라이로 그는 동방교회의 제의인 펠른을 입고 그 위에 오모포리온이라고 하는 길다란 주교용 영대를 걸치고 있다. 이 오모포리온은 초세기에는 동·서방 모두 같았으나 서방교회는 후에 축소되어 오늘날 대주교 이상의 성직자가 걸치는 빨리움의 형태로 남았다.
또한 니콜라이는 왼손에 복음서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에는 닫혀진 복음서를 들고 축복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주교의 상징인 오모포리온을 들고 하사하시는 성모님을 그렸다.
전체 이콘의 테두리에는 이 이콘을 소장하게 되는 가문에서 특별히 공경하는 성인 등 그려지거나 그 중심이 되는 이콘의 주인공의 인생이 그려지는데 여기서는 왼쪽 가장자리에 성티모페오스와 성 이오나가 위아래로 그려져 있으며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모스크바근교의 삼위일체 수도원을 창설한 성 세르게이와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를 위아래에 각각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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