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사회 곳곳에서 인류의 보편적 이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바티칸박물관 특별전은 ‘순교와 박해’의 역사뿐 아니라, 근현대 한국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교회의 사회참여’ 역사를 보여준다.
특히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 한국사회의 독재와 부패에 대항해 민주화를 뿌리내리는 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할은 7막과 8막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미디어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해외에서 여는 전시인 만큼 9막에서는 대한민국 고유의 색채를 담은 작품들도 선보인다.
한편 9개 막으로 구성된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모습과 한국의 주요 성지를 소개한다.
■ 7막 - 또 하나의 시련 :일제강점기와 민족의 분단
오랜 박해 끝에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교회는 1910년 일본 제국주의 강제 합병으로 다시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학교 설립을 규제했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반면 한국교회는 이 시기에 애국계몽운동을 추진했고 신자들은 개별적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대표적인 활동 인물이 안중근 의사였다. 안 의사는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애쓰다 순국한 독립 운동가이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의 신심은 개인적 구원에만 그치지 않고 민족 구원사상으로 승화, 일제강점기 독립전쟁과 1909년 하얼빈 의거로 표출됐다. 7막에서는 안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의 부탁을 받아 쓴 <경천>(1910)이 전시된다.
일제 강점기는 어느 때보다도 출판 사업이 활발했다. 1886년 일본 나가사키에 있던 ‘성서 활판소’가 서울 정동으로 이전했다. 지금의 ‘가톨릭출판사’로 이어진 ‘성서 활판소’에서는 조선 최초의 한글완역 신약성경인 「사사성경」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이 간행됐다. 한글로 간행된 교회 서적들은 한글의 대중화와 민중 계몽에 기여했다.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에 창간한 순한글판 「경향신문」은 민족을 대변한 언론으로 실력을 양성해 점진적으로 국권을 회복하려는 운동을 펼쳤다. 이번 전시에서 그 창간호를 만날 수 있다.
경천 안중근(1879~1910)이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의 부탁을 받아서 쓴 유묵.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인 ‘경천(敬天)’이 쓰여 있고,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大韓國人安重根書)’라는 글씨와 왼손 약지를 잘라낸 채 찍은 손도장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사사성경 1910년 발간된 한국교회 최초의 4복음서 한글 완역본.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60년간 한국교회의 유일한 한글 복음서였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 8막 - 인간을 위한 신앙 : 인간성 회복과 내적쇄신
한국교회는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억압됐던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보호에 앞장섰다. 소외된 이웃인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의 벗이 되어 그들의 권리를 함께 외쳤고 민주화와 인권 회복을 위한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교회 정신 안에서 인간 존엄성 구현을 위한 실천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는 명동대성당이 있었다. 1980년대 명동대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 1987년 6월 10일부터 5일간 군부독재에 항거하면서 전개된 명동대성당 농성은 민주화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과 군인들에 맞서, “나를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농성자들을 보호했다. 8막에서는 명동대성당과 한국의 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을 통해 교회의 사회참여 모습을 보여준다.
칠락(七樂)의 묵주기도 성모 우리나라 국보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형태를 차용한 성모상. 장발(1901~2001) 화백이 1963년에 선보인 작품으로, 당의보에 용문양 대신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를 묘사했고 다리 모양을 가부좌에서 교각상 형태로 바꿨다. 개인 소장
■ 9막 - 낮은 땅에서 천국을 품다
바티칸박물관 특별전은 230여년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은 과거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약속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전은 우리의 선조들이 신앙을 갈구했던 이유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고난을 기억, 현재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신앙을 성찰하며 실천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기획했다.
9막에서는 한국 초기 교회 순교자들의 무덤을 상징하는 공간인 〈순교자들의 무덤>(2017)을 꾸며, 1839년에 순교한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와 딸 ‘이정희 바르바라’의 지석을 포함, 총 6명의 순교자들의 묘에서 발굴된 지석과 새로 제작한 백자 사발 70점을 전시한다. 또 ‘103위 성인을 위무함’과 ‘일어나 비추어라’ 등의 작품을 통해 순교자의 유산이 한국사회 화합을 이끌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9막에서는 서울대교구가 소장한 ‘성모자화’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성모자와 순교자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의 ‘성모자화’ 등 한국적인 주제와 기법으로 표현한 다양한 성모자화가 전시돼 관람객의 이목을 끌 전망이다.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의 지석 허계임 막달레나의 묘표로 1839년 순교했으며 1938년 9월 27일 이장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가족관계, 무덤의 소재 등을 기록해 고인과 함께 묻었던 돌판이나 그릇을 말한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일어나 비추어라 2014년 ‘하느님의 종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기념해 제작된 나전칠화. 총 세 부분으로 구성해 한국 천주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며 남·북한을 넘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화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옹청박물관 소장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