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자체가 미궁(迷宮)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종교적인 곡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프란치스코·81·서울 아현동본당)의 말처럼, 그가 작곡한 18분 길이의 곡 ‘미궁’에는 하나의 인생이 담겨 있다. 전체가 7장으로 이뤄진 이 곡은 탄생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
‘미궁’은 누구든 그를 처음 만나면 이 곡에 대해 먼저 물어볼 정도로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곡이다. 1975년 서울 명동 국립극장 초연 당시엔 음악회 도중 한 여성이 무섭다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9월 9일 오후 4시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에서 열리는 가곡(歌曲) 콘서트 ‘황병기 가곡의 밤’에서 그는 바로 이 ‘미궁’을 연주한다.
‘미궁’은 가야금 선율에 소프라노 윤인숙이 웃는 소리, 우는 소리, 신음하는 소리, 야유하는 소리 등 꾸밈없는 소리를 얹어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가야금 또한 전통 주법이 아니라 첼로 활, 장구채, 거문고 술대 등을 사용해 열두 줄을 긁고 누르고 튕기며 연주한다.
콘서트에서는 ‘즐거운 편지’, ‘우리는 하나’. ‘차향이제’, ‘추천사’와 함께 올해 새로 쓴 ‘광화문’도 선보인다. ‘광화문’은 서정주 시인이 1959년에 쓴 동명의 시에 선율을 붙인 가곡이다.
황 명인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좋아했던 시”라면서 “우리 민족 전체의 광명과 평화를 담고 있는 시여서 오래 전부터 곡을 붙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야금곡 못잖게 가곡도 많이 작곡했다. 가곡이라고 하면 시에 노래를 붙인 서양 가곡을 떠올리기 쉽지만, 가사·시조와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 중 하나로 선비들만 부르던 고급 ‘노래’를 칭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가 맨 처음 창작한 작품도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곡을 붙인 가곡이었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다 2001년 정년퇴임한 황 명인은 2006년부터 5년간 국립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우리 창작음악의 1세대로, 우리나라 최고 가야금 연주자이자 국악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가야금 인생 66주년, 창작인생 55주년을 맞이한 황 명인은 자신의 음악에 관해 “사실 재미 없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청량음료 보다는 생수에 가까운 음악이지요. 하지만 산골에 있는 오염되지 않는 물과 같습니다.
이어 “저는 평범한 것이 좋다”면서 “그 안에 참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년 전 부부가 함께 세례를 받은 황 명인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 한결같이 참례할 수 있는 미사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교리공부를 할 때는 성호경을 그으면서도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가톨릭에 묘하게 빠져들고 있다”면서 “하느님에 대해 하나 둘 씩 알아가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황 명인은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힘닿는 순간까지 음악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