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년 3월 7일
권태련씨에게 대세를 주고 정대진씨 내외분과 함께 암 환자 댁을 방문했다. 허름한 아파트의 1층이었다. 들어서면서 보니 환자의 남편이 녹용을 손질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니 이름은「유인중」이며 무주 구천동 출신이라고 한다. 이민 온 지는 8년째라고 한다. 생계를 위하여 1천 마일이나 되는 북쪽 인디안촌에 가서 녹용을 대량 구입 가공하여 미국 본토로 내다판다고 했다. 먹고 살려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 하다 보니 부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동행한 정대진씨 내외가 1년 내내 이 집을 방문했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쏟는 정성은 지극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들어갈 때 환자는 식사 중이었는데 몸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44세면 한창 멋 부리며 신나게 살 나이인데 그만 병고에 시달리며 6년 세월을 저렇게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환자 본인인들 오죽하랴 싶었다. 나는 진정 애처롭고 안타까운 이 부부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봤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앙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간구의 기도밖에 없었다.
나의 울먹이는 진정한 기도에 모두들 숙연해 하는 분위기를 눈을 감고도 느낄 수 있었다.
권태련씨 대세 때도 역시 머리에 손을 얹고 자유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있는 순간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온 전신이 뜨거운 화롯가의 열기를 느꼈었다. 순간 성령을 체험한 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으나 나에게 그런 현상이 오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어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이 암 환자를 위한 기도 중에 또 한 번 똑같은 현상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정대진씨 내외와 함께 성당 가는 도중에 유재인씨로부터『여태껏 많은 분들이 다녀가며 기도했지만 어제처럼 그토록 가슴에 와닿고 눈물 겨운 간절한 기도는 처음이었다』며『희망과 용기를 갖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며 연락이 왔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주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은 새 꾸르실리스따 27명을 포함한 총 33명의 꾸르실리스따들에게 처음으로 갖는 울뜨레야와 팀 회합을 시범 보이고 진행 요령을 교육했다.
미리 짜놓은 순서대로 제1부 성체 강복과 사도의 시간이었고 제2부 울뜨레야와 팀 회합에서는 이번 꾸르실료 기간의 일들이 주로 보고되니 실감이 났다. 제3부 우정의 모임까지 선보이니 무려 3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
앞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사무국 차원의 일들을 세밀히 일러주고 숙소로 돌아오니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새벽 2시가 되었다. 모두들 돌아가고 자리에 드니 새벽 3시였다.
동부시간으로 아침 7시에 해당하니 완전히 낮과 밤이 바뀐 요즈음의 생활이다.
■ 92년 3월 8일
주일 오후 2시, 8시 미사 강론을 부탁 받았기에 준비하느라 오전에는 무척이나 바빴다.「평신도의 역할」에 대하여 30분 정도 강론을 했다.
저녁 6시부터는「레지오 단원의 자세와 숙지사항」이란 제목으로 단원들에게 참다운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임무를 숙지시키기 위해 강의했다. 곧이어 성당으로 가서「바다의 별」꾸리아 창단식을 거행했다. 식순에 따라 전 단원이 장미꽃과 초를 봉헌하고 성가「네 머리를 꾸미오리」를 합창하는 가운데 참가한 모든 신자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기쁨의 순간을 맛보았다. 단원 6명의 선서식 후, 성모님을 에워싸고 단원들 모두가 감사기도와 주모경을 바쳤다. 폐회기도와 단가를 큰 소리로 합창하면서 밤 10시에 모든 행사가 끝났다.
이로써 이번 앵커리지 출장 임무가 모두 성공리에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고 피곤이 엄습해왔다. 선출된 꾸리아 간부들을 숙소로 데리고 와서 앞으로 이끌어갈 꾸리아 회합 요령과 간부들의 임무를 재삼 강조했다.
■ 92년 3월 9일
어제까지 모든 일정이 끝났기 때문에 오전에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니까 국선도 수련 마지막 날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다. 내가 없이도 기초적인 것은 할 수 있도록 잘 지도하여 주었다. 나진흠 신부님이 그간 수고했다며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식사 도중 나 신부님께서「여성 제1차 꾸르실료」를 다시 한 번 당부하셨다.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큰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지막 밤의 설렘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92년 3월 10일
아침 일찍 정대진씨 내외와 유진식 회장이 오셨다. 함께 공항에 도착하니 서요셉씨와 권오진 회장이 나와 계셨다. 이번 꾸르실료 기간 중 제일 변하지 않을 것이라던 서요셉씨가 제일 많이 변하여 그토록 열성이셨다.
시간이 되어 석별의 정을 나누고 비행기에 탑승하니 초만원이었다. 3시간 15분 비행 후 시애틀에 도착하여 갈아타기까지 1시간 여유가 있어 시애틀본당 신부님과 구범회 주간에게 전화했다. 염요한씨 부인과 통화되어 시애틀 레지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고 기회되는 대로 한 번 들러보기로 했다.
워싱턴 공항에는 예정대로 도착했으나 필라델피아 행이 1시간 연발이라 긴 의자에 드러누워 단전호흡으로 피로를 풀었다.
밤 11시에 필라델피아에 도착, 체리힐 사제관으로 가니 여러분들이 나와 환영해 주셨다. 아틀랜틱시티로 전화를 하여 최홍길 신부님께 도착 인사를 드렸다.
■ 문태준 단장 연락처 Paul T.Moon 7250 yongc st. #606 Thornhill Ontario L4J7X1 CANADA TEL(905)881-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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